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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 : 질투심이란 이름의 괴물

long&cucumber 2023. 6. 1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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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입니다. 작품의 줄거리는 16세기경 오스만 제국(지금의 튀르키예)이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키프로스를 침략해왔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은 키프로스를 방어하기 위해 뛰어난 전투능력을 지닌 군인 오셀로를 키프로스 총독으로 파견합니다. 오셀로는 작품 속에서 무어인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당시 북아프리카 사람들을 이렇게 지칭했고, 유럽인들에 비해 거무스름한 피부색을 하고 있었죠. 그의 이러한 인종적인 특성은 작품의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1

막이 오르면 이아고라는 인물과 로데리고가 대화를 나누면서 극이 시작됩니다. 이아고는 오셀로 장군의 기수(旗手)인데 돈은 많으나 생각은 조금 모자란 귀족 청년 로데리고를 꾀어 자기 야심을 채우려 합니다. , 로데리고가 짝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 데스데모나가 얼마 전 오셀로와 비밀결혼을 했는데, 그 둘의 관계를 갈라놓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충동질하죠. 둘은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브라반티오 의원을 찾아가 그의 딸과 오셀로와의 관계를 폭로합니다. 브라반티오는 오셀로가 자기 딸을 납치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오셀로를 감옥에 넣으려고 하지만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는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임을 고백합니다. 브라반티오는 마지못해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면서 오셀로에게, “아버지를 속였으니 자네도 속일지모른다는 암시적인 대사를 남깁니다.

 

오스만 제국 군대와의 급박한 전투로 인해 다음날 오셀로는 키프로스로 떠나고, 며칠 후 데스데모나도 합류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로데리고는, 데스데모나를 잃느니 차라리 물에 빠져 죽어버리겠다고 탄식합니다. 이아고는 그런 로데리고에게 재산을 다 챙겨서 데스데모나가 오셀로와 함께 있게 될 키프로스로 따라가라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오셀로에게서 데스데모나를 빼앗는 일을 끝까지 돕겠다고 맹세합니다. 사실 이아고는 겉으로는 오셀로에게 충성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그를 증오하고 있었죠. 여러 번의 전투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자기를 제쳐두고 전투경험도 별로 없는 카시오라는 젊은 애송이를 부사령관으로 기용한 일과, 자기 아내 에밀리아가 오셀로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셀로와 카시오 둘 모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오셀로로 하여금 아내 데스데모나와 카시오와의 관계를 의심하게 만들려는 계획을 꾸밉니다.

 

 

 

2

오셀로 일행이 키프로스에 도착하자마자 적군의 함대가 폭풍우에 가라앉아 섬멸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오셀로는 전투의 승리에다가 자신의 결혼 소식까지 공표하며 부하들에게 축제를 즐기도록 허락합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자제심을 지키도록 당부하면서 카시오에게 아무런 사고도 생기지 않게 잘 관리하라고 지시합니다. 이때 이아고는 술에 약한 카시오에게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하여 자제력을 잃게 만드는 한편 로데리고를 시켜 술 취한 카시오가 소란스러운 싸움에 휘말리도록 만들죠. 이 광경을 목격한 오셀로는 카시오를 해고합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자기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된 것에 비통해하는 카시오에게 이아고는 데스데모나에게 복직을 부탁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친절하고도 너그러운 데스데모나는 틀림없이 카시오의 딱한 사정을 오셀로에게 말해줄 것이고, 오셀로는 사랑하는 아내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을 거라고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아고의 속셈은 오셀로로 하여금 데스데모나의 선량한 동기를 카시오에 대한 불륜관계 때문이라고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3

카시오는 이아고의 조언대로 자기의 상황을 호소하기 위해 데스데모나를 찾아갑니다. 평소 카시오를 신뢰해왔던 데스데모나는 그의 복직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녀는 약속한 대로 오셀로에게 귀찮을 정도로 카시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럴수록 이아고는 오셀로로 하여금 데스데모나의 동기를 의심하도록 이간질하는 말을 그의 귀에 흘려넣습니다. 마치 돌을 던져 생겨난 조그마한 파문이 호수 전체에 점점 퍼져나가듯 오셀로는 자기의 거뭇거뭇한 피부색과 이미 중년을 넘긴 나이까지 떠올리며 자기 아내와 카시오와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이아고는 오셀로의 마음이 질투심으로 활활 타오르게 만들 결정적인 기회를 얻게 되죠. 바로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게 사랑의 징표로 항상 간직하라고 선물했던 손수건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된 것입니다. 이아고는 그 손수건을 카시오의 방에 떨어뜨려 놓습니다.

 

질투하는 사람에겐

공기처럼 가볍고 하찮은 물건도 성경처럼

강력한 확증이다. 이게 일을 벌이겠지.

무어인은 내 독으로 이미 달라지고 있다.

위험한 상상은 그 본질이 독약인데

처음엔 역겨움을 거의 못 느끼다가

약간씩 핏속으로 퍼지기 시작하면

유황처럼 타오른다”(p.102)

 

 

 

4

혼란한 와중에 베네치아에서 사신이 도착합니다. 베네치아 의회에서 오셀로에게 귀국을 명하고 대신 부사령관 카시오를 키프로스 총독에 임명한다는 전갈이었습니다. 카시오가 총독에 오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데스데모나는 자기 일처럼 기뻐합니다. 하지만 둘의 관계를 의심하던 오셀로는 질투심에 격분한 나머지 데스데모나를 폭행하고, 함께 있던 사신들은 경악하죠.

 

오셀로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데스데모나는 슬퍼하며 자기 침실에서 오셀로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에밀리아에게 자기의 결백함을 호소하면서 불길한 예감을 토로합니다.

 

 

 

5

자기가 이용만 당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로데리고는 이아고를 찾아와서 데스데모나를 포기하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아고는 이미 분별력을 상실한 로데리고를 다시 한번 구슬립니다. 카시오가 새 총독의 자리에 오르면 오셀로와 데스데모나가 떠나게 될 테니까 카시오를 제거하라고 말이죠.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는 로데리고는 또 한번 이아고의 속임수에 넘어갑니다.

 

이제 그가 카시오를 죽이든지

카시오가 그를 죽이든지 또는 서로를 죽이든지

모두가 내 이득이다. 로데리고가 살게 되면

데스데모나에게 줄 선물이란 구실로

그를 속여 내가 뺏은 황금과 보석을

큼직이 변상하라 요구할 것이다.

그건 안돼. 카시오가 살아남게 된다면

그의 삶이 보이는 일상적인 매력으로

내 꼴은 추해진다. 게다가 무어인은 그에게

날 폭로할지도 모른다. 그건 아주 위험해.

, 죽어야 해. 그래야지!”(p.155)

 

로데리고는 이아고가 알려준대로 길가에 숨어있다가 카시오를 찌르지만 죽이는 데는 실패합니다. 그리고 부상을 당한 카시오가 이아고에게 도움을 청하자 이아고는 사건을 덮으려 오히려 로데리고를 살해합니다.

 

한편 데스데모나의 침실을 찾은 오셀로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는 그녀를 목 졸라 죽입니다. 이때 카시오에 관한 사건을 보고하러 온 에밀리아가 죽어가는 데스데모나를 발견하죠. 에밀리아의 다급한 외침소리에 이아고와 다른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 자리에서 모든 진실이 밝혀집니다. 에밀리아의 입을 통해 자기 남편 이아고는 거짓말쟁이며, 손수건 역시 데스데모나가 카시오에게 준 것이 아니라 남편이 자기에게 훔쳐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을 폭로합니다. 그 순간 흥분한 이아고가 아내 에밀리아를 찌르고 도망칩니다. 사람들이 이아고를 뒤쫓고, 에밀리아는 데스데모나 옆에서 숨을 거두죠. 얼마 후 카시오와 사람들이 붙잡힌 이아고와 함께 등장합니다. 모든 상황을 알게 된 오셀로는 고통스럽게 오열하며 죽은 데스데모나에게 키스한 후 자결합니다.

 

 

 

()이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해 등장인물들의 비극적 결말이 예정되어 있는 고대 그리스 비극들과는 달리 세익스피어의 비극 작품들에는 자신의 성격적 결함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오셀로는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질투심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이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합니다.

 

, 장군님, 질투심을 조심해요! 그것은

희생물을 비웃으며 잡아먹는 푸른 눈의

괴물이랍니다.”(p.94)

 

많은 문학작품 속에서 질투심은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묘사될 때가 많으나 이 작품에서는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용감한 군인 오셀로가 질투심의 무기력한 희생자가 된다는 설정이 아이러니합니다.

 

그에 비해 데스데모나와 에밀리아 같은 여성 인물들의 모습은 인상적입니다. 데스데모나는 피부색도 다르고 나이도 많은 오셀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이루어내고야 마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여성입니다. 그리고 에밀리아 역시 오셀로와 자기 남편 이아고의 죄악을 서슴없이 고발하다가 죽음을 맞게 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쓰여진 시기가 대략 1603년에서 1604년으로 추정되는데 이렇게 시대를 앞서간 여성 캐릭터들을 창조해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마지막 5막에서 에밀리아가 오셀로와 이아고에 맞서서 쌍욕을 해가며 진실을 외쳐대는 장면은 통쾌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네가 나를 해칠 힘은 내가 견딜 아픔의

절반도 못된다. , 얼간이. , 멍청이.

흙처럼 무식해! 네가 한 이 행위는

네 칼 따윈 겁 안 나, 스무 번 죽더라도

네 정체를 알리겠다.”(p.171)

 

, 그리고 햄릿을 소개하면서 언급한 내용이기도 한데, 세익스피어의 작품은 읽을 때보다 연극으로 상연되는 것을 관람할 때 재미와 감동이 배가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마무리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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