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문학 속에 담겨진 과학과 윤리의 문제
오늘 소개할 책은 영국의 작가 메리 셸리가 쓴 소설 「프랑켄슈타인」입니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1815년 당시 18세였던 메리는 자기의 연인이었던 시인 퍼시 셸리(나중에 남편이 됩니다)와, 또 한 명의 유명한 시인인 바이런 등과 함께 제네바의 한 별장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폭풍우가 치던 밤, 무료함을 달래고자 그들은 각자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쓰기로 합니다. 이때 처음 메리에게 영감이 떠올라 3년 뒤인 1818년에 발표한 소설이 바로 「프랑켄슈타인」입니다. 처음 발표된 이후 200여 년 동안 영화나 연극, 만화, 또는 뮤지컬 등을 통해 다양하게 재창조되고 소비되어 오면서 우리에게 친숙해진 이 작품은 흥미진진한 공포소설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원작을 읽어보면 작가의 섬세한 감수성과 고전적인 문체가 우리의 예상을 저버리게 만듭니다. 작품 속에는 작가와 교류하던 바이런이나 셸리의 싯귀가 자주 등장하고, 단테나 밀턴 등도 종종 인용되면서 특이한 소재 외에는 오히려 그리스 고전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죠.
이야기의 틀은, 북극지방을 탐험하기 위해 항해 중이던 월턴이란 인물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표류하던 주인공 프랑켄슈타인을 만나 그로부터 기이하고도 공포스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후, 자기 누이에게 그 이야기를 편지로 전해주는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오해가 있을까봐 미리 일러두는 것은, 이 이야기를 일인칭 시점에서 하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무서운 모습을 한 괴물 이름이 아니라, 그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제 1 부
나는 제네바의 명문가 출신이고 나의 아버지는 명예로운 공직에 종사하다가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나와 동생 둘을 낳으셨다. 또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자기 여동생의 딸 엘리자베트를 입양하여 나의 장래 신부감으로 생각하며 남매처럼 양육하기도 하셨다. 나는 너그러운 부모와 사랑스런 엘리자베트, 그리고 앙리 클레르발이라는 둘도 없는 친구에 둘러싸여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내 나이 열세 살 때 기족들과 여행을 갔다가 어느 여관에서 16세기 독일의 의사이자 마술사였던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의 책을 발견하고 탐독하게 되었다. 그 이후 또 다른 신비주의 자연철학자들을 찾아 읽으면서 나는 인간의 육신에서 질병과 죽음을 추방시킬 불멸의 묘약을 갈구하게 되었다. 열다섯 살 때에는 번개의 위력을 목격한 후 그 원인이 되는 전기현상에 깊은 관심을 품기도 하였다.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 가족을 떠나 독일의 잉골슈타트 대학에 가서 공부하게 되었고 자연철학, 그 중에서도 특히 화학에 몰두하였다. 몇년 동안 한번도 고향을 찾지 않고 연구에 매진한 결과 나는 엄청난 학문적 발전을 경험하게 되었고, 특히 인간의 신체와 생명현상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며칠 밤낮을 지하 납골당이나 시체 안치소에 머물면서 생명과 죽음의 현상을 공들여 분석하고 연구하던 중 어느 날 갑작스런 한 줄기 빛과 같이 개체 발생과 생명의 원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나는 광기에 가까운 충동에 이끌려 2년여 동안 작업한 끝에 드디어 한 생명체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토록 열정을 쏟아 만든 생명체가 눈을 뜨고 움직이는 순간 그의 외모에서 오는 혐오감과 공포심에 사로잡혀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얼마 후에 나의 사랑하는 어린 동생 윌리엄이 살해당했다는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고, 나는 내 손에 의해 지음받았으나 곧바로 버림받은 그 괴물의 보복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제 2 부
최초의 보복 이후 난 내가 창조한 괴물이 또 다른 복수를 저지르지나 않을까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런 괴물을 만들어낸 내 자신이 진짜 살인자라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어느 날 괴물은 나를 찾아와, 자기가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 자기는 사람들에게 동정과 선의를 품었으나 흉측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혐오와 경멸을 받았었는지를 분노와 적개심에 가득차서 토로했다.
“나는 외롭고 불행하다. 사람들은 나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기형이고 추악한 존재라면 날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 나를 위해 여자를 만들어 달라. 내 존재에 필요한 공감을 함께 나누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건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 요구는 당신이 거절할 수 없는 내 권리의 주장이다.”(p.192-193)
자기와 비슷한 여자를 만들어주면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보복을 멈추고 인간세계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나겠다는 괴물의 요구를 나는 처음에 거절했다. 하지만 내가 만든 피조물이 불행 가운데 살아가는 것 역시 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은 승낙하게 되었다.
제 3 부
작업은 잘 진전되지 않았고 그 사이 아버지는 나와 엘리자베트의 결혼을 제안하셨다. 나는 동의했으나, 그 전에 얼마 동안 영국 여행을 다녀오고자 계획을 세웠다.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는 괴물이 제안한 일을 마무리지어야만 했기 때문이고, 당시 영국의 어느 과학자가 나의 작업에 유용한 발견을 했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어느 한적한 시골에 작업실을 마련하여 작업에 몰두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하고 있는 끔찍한 일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이제 나는 또 다른 존재를 창조하려 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 성정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짝보다 천 배 더한 악의에 불타 살해와 불행 자체를 즐길지도 몰랐다. 그는 인간의 거주지를 벗어나 사막에 몸을 숨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어느 모로 보나 사고하고 추론하는 동물이 될 것이 분명한데, 자기가 창조되기 전에 맺어진 약조를 거부할 수도 있었다. 서로를 싫어할 수도 있었다. 이미 살아있는 피조물은 일그러진 자기 형상을 증오하는데, 눈앞에 똑같은 형상이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더 큰 증오심을 품지 않을까? 그녀 또한 그를 혐오하며 등을 돌려 인간의 우월한 아름다움을 열망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떠나면 그는 다시 혼자 남을 것이고, 자기와 같은 종족에게도 버림을 받는다면 이 새로운 도발에 분노가 폭발할지 모른다.”(p.224-225)
더구나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자식을 낳아 결국 악마의 종족이 지상에 번식하게 될 것이란 생각에 이르게 되자 괴물의 제안을 받아들인 나 자신을 저주하게 되었다. 난 즉시로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이미 만들어 놓은 것들마저 파괴하였다. 몰래 숨어서 나의 작업을 감시하던 괴물은 분노에 사로잡혀 철저한 복수를 다짐하였고, 그 다짐대로 먼저는 나의 둘도 없는 친구 클레르발을, 그리고 얼마 후에는 나와 결혼하던 날 밤에 사랑스런 나의 신부 엘리자베트를 살해하였다. 그 소식을 전해들으신 아버지마저 쓰러져 며칠 후 돌아가셨다.
이후 나는 복수의 일념에 사로잡혀, 또 한편으로는 내가 저질러 놓은 잘못을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온 세계를 떠돌면서 괴물을 추격하였다. 그러던 중에 마침내 북극에까지 쫓아와 괴물과 대결하기 직전 표류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프랑켄슈타인은 듣고 있던 월턴에게 자기의 복수를 대신 완수해달라고 부탁하고는 세상을 떠납니다. 몇 시간 후 월턴은 프랑켄슈타인의 시신 앞에 찾아온 괴물을 만나게 됩니다. 월턴은 친구의 마지막 부탁을 머릿속에 떠올렸지만 괴물이 먼저 자신의 회한과 고통을 쏟아낸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당신 배에서 내려 여기로 날 데려다준 얼음뗏목을 타고 지구의 최북단으로 떠날 것이다. 내 장례식을 위한 장작을 모아 화장용 더미를 쌓고 이 비참한 육신을 재가 되도록 태워서, 행여 나 같은 존재를 하나 더 창조하고자 하는 호기심 많고 불경한 인물이 보더라도 남은 유골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도록 하겠다. (...) 죽음은 이제 내게 남은 유일한 위로다. 범죄에 더럽혀지고 쓰디쓴 회한에 갈기갈기 찢긴 내가 죽음이 아니라면 어디서 휴식을 찾겠는가?”(p.302)
그리고는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장소를 향해 사라져 버립니다.
과학이 급속도로 진보함에 따라 명확한 윤리적 대비책도 없이 인간복제나 AI의 출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시대입니다. 그럴수록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무겁게 느껴집니다. 꼭 과학과의 관련성 말고도 이 소설이 던지고 있는 화두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 선과 악의 모호성, 친구와 고독의 문제, 사회적 부조리와 사법체계의 모순 등등. 거대한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야 하는 이야기들이 이 소설 속에 담겨있기에 오랫동안 꾸준히 읽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하나 선택하라면 프랑켄슈타인이 월턴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덧붙이는 다음과 같은 경고입니다.
“나로부터 배우도록 하라. 가르침을 듣지 않겠다면 적어도 내 사례를 보아 깨닫도록 하라. 지식의 획득이 얼마나 위험한지, 본성이 허락하는 한계 너머로 위대해지고자 야심을 품는 이보다, 고향을 온 세상으로 알고 사는 이가 얼마나 더 행복한지를.”(p.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