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이성과 논리의 향연(상)
오늘 소개할 책은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입니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과 맞물려 2000년대 초에 일종의 신드롬을 일으켰던 책입니다. 샌델 교수는 어떤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인지 알려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예를 들어, 소득이나 부와 같은)을 어떻게 배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회는 세 가지 접근방식 중에서 선택을 하게 되는데 복지, 자유, 미덕이 그것입니다. 이 책은 정의에 관한 이 세 가지 견해의 역사적 맥락과 장단점을 살피고 있습니다.
공리주의
먼저 복지에 초점을 맞추는 견해인 공리주의에 대해 설명합니다. 제레미 벤담이란 사람에 의해 처음 제기된 이 이론은 도덕의 최고원칙을 행복의 극대화, 즉 쾌락의 총량이 고통의 총량보다 많게 하는 것에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최상의 결과만이 고려사항이고 계산으로 따질 수 없는 도덕적 의무나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론은 단순하고 분명한 만큼 강력하여 오늘날에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죠. 하지만 반박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공리주의의 가장 큰 약점은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공리주의자라면 고대의 수많은 로마시민들에게 쾌락을 주기 위해 한두 명의 기독교도를 굶주린 사자들이 있는 원형경기장에 풀어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무고한 시민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테러 용의자(또는 그의 가족)를 잔인하게 고문하는 일도 정당화될 수 있겠죠.
공리주의의 또 한 가지 약점은 행복을 측정함에 있어서 사람들의 개성과 기호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가치를 단일한 잣대(주로 돈)로 측정하려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반박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입니다. 이 책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밀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이유가 인간의 존엄성이나 기본권 때문이 아닌 공리주의적 사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는 장기적으로 볼 때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인류의 최대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또한 벤담이 모든 쾌락을 단일한 척도로 측량한다는 반박에 대해서도, 인간이 느끼는 쾌락은 강도와 지속성이라는 기준뿐 아니라 질적인 차이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족하는 돼지보다 만족못하는 인간이 낫고, 만족하는 바보보다는 만족못하는 소크라테스가 낫다”라고 그는 말했죠. 우리가 「햄릿」을 위대한 예술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저급한 오락거리보다 「햄릿」이 더 재미있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고급능력을 사로잡아 더욱더 인간답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밀은 벤담의 공리주의가 받는 비난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공리와 무관한 인간의 존엄성과 개성이라는 도덕적 이상을 강조한 셈이 되었습니다.
자유지상주의
책의 세 번째 장부터는 처음에 말한 세 가지 접근방식 중에서 두 번째 방식, 즉 자유와 연관된 내용에 대해 설명합니다. 매년 「포브스」지가 발표하는 미국의 400대 부자 명단을 보면 상위 1%가 미국 전체 부의 1/3을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하위 90%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부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재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불평등이 부당하기 때문에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강요나 사기 없이 시장경제에서 자유로운 선택으로 얻는 부라면 전혀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후자와 같은 생각에 동조하면서 부의 재분배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라고 부르죠. 이들은 인간의 자유와 기본권을 존중하면서 자유시장을 옹호하고 정부의 규제에 반대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국가의 역할이라고 널리 알려진 많은 행위(이를테면 강제적인 사회보장제도나 정부가 제시하는 최저임금제 같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법행위라고 주장하죠.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자신의 저서 「아나키,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에서 자유지상주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철학적으로 옹호합니다.
“개인에게는 워낙 강력하고 광범위한 권리가 있어서, 국가가 할 일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의문이다. (...) 오직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고, 사람들을 폭력과 절도와 사기에서 보호하는 제한적인 기능만 수행하는 ‘최소국가’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 이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일을 한다면 어떤 일도 강요받지 않을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밖에 없으며, 그런 국가는 정당화될 수 없다”
Nozick의 주장과 논리는 자유지상주의의 도덕적 정수인 “자기소유개념”과 연결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해서 나의 동의없이 나의 소유인 시간이나 신체 일부를 빼앗아가면 안되듯이 부의 재분배도 마찬가지로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책에서 꽤 길게 설명하고 있는 마이클 조던의 사례나 신장 판매 및 안락사 문제에 대한 논의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대리인 고용
제4장에서는 대리인 고용문제를 다룹니다. 이런 주제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분야는 병역문제입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모병제와 징병제, 그리고 대리징병제(남북전쟁 당시의) 등을 시행해 왔습니다. 과연 어떤 제도가 가장 공정한 것일까요? 자유시장주의자나 공리주의자라면 모병제를 가장 선호할 것이고, 그 다음은 유급대리인 고용을 허용하는 징병제, 그리고 완전징병제를 가장 반대할 것입니다. 그들이 모병제를 선호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징병제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병제를 통해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저자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가난과 경제적 어려움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군입대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이유에서죠. 현재 모병제를 시행 중인 미국만 하더라도 현역사병 중 저소득 및 중간소득 계층 출신의 젊은이가 차지하는 비율이 현저히 높습니다.
모병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반박은 모병제가 시민의 미덕과 공동선을 해친다는 것입니다. 이 반박은, 병역이 단순히 여러 직업들 중 하나가 아니라 시민의 의무임을 강조합니다. 이런 견해에서 보면 병역을 상품화하는 행위는 시민의 이상을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값싼 외국인을 고용하는 용병제도나 군기능의 많은 부분을 민간기업에 위탁하는 형태로 변질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대리인 고용문제의 또 한 가지 첨예한 사례는 대리출산입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대리출산에 관한 어느 소송사건을 예로 들면서 저자는 “문명화된 사회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라는 법정 판결문을 인용합니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게 될 이마누엘 칸트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으므로 물건처럼 사용되어서는 안되며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