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제3부) :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
[제 3 부] :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
이 책의 기본논리는 제2부에서 주로 논의했던 식량생산이 대륙간, 민족간의 발전속도의 차이와 정복전쟁의 양상을 결정지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식량생산의 차이는 병원균, 문자, 기술, 그리고 중앙집권적 정치체제 등에서 차이를 낳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책의 제3부를 구성하는 11-14장은 각각 그 요인들을 하나씩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 11 장 :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
제3부의 첫 번째 장인 11장에서는 인간을 죽게 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역사를 변화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던 세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전시에 사망한 사람들 중에는 전투에서 죽은 사람보다 세균에 희생된 사람이 더 많았어요. 그런데 왜 식량생산과 농업발생이 대중성 전염병의 진화를 촉발했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요. 한 가지 이유는, 농업이 수렵채집 생활보다 훨씬 더 높은 인구밀도를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홍역이나 천연두 같은 대중성 전염병은 환자 한 사람으로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신속하게 전파되어 감염된 사람들을 단기간에 죽게 만들죠. 반면 운좋게 회복한 사람에게는 항체가 형성되어 꽤 오랫동안, 혹은 평생 그 질병이 재발되지 않아요. 그러므로 병이 다시 유행하려면 충분한 수의 아기가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죠. 그런 이유로 이런 대중성 질병은 수렵채집민 같은 소규모 사회에서는 존속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그런 질병에 대한 항체가 없는 것이고, 그 결과로 외부에서 한 사람이라도 그런 유행병을 가지고 들어오면 부족 전체가 거의 전멸하는 비극을 역사적으로 수없이 반복했던 것입니다.
농업발생이 대중성 전염병의 진화를 촉발시킨 또 한 가지 이유는 정주형 생활방식 때문이에요. 농경민들은 야영지를 자주 옮기는 수렵채집민과는 달리 각종 세균이 오물과 식수 등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되기 쉬운 환경이죠.
그렇다면 이러한 질병들은 어디서 생겨났을까요? 세균에 대한 분자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대부분의 대중성 전염병은 인간이 야생동물을 가축화하여 대규모로 사육하기 시작하면서 가축으로부터 인간에게로 옮겨진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처음에는 가축들 사이에서만 전염되던 것이 후에 인간에게도 전염되어 생존하는 세균으로 진화되었고, 나중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만 퍼져나가는 전염병으로 진화한 것이죠.
앞서 언급했던 스페인의 코르테스는 천연두의 도움으로 겨우 600명의 병력만으로 아스텍의 대다수 인구를 몰살시킬 수 있었고, 피사로 역시 천연두의 도움으로 수백만의 잉카제국을 정복한 것입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죽게 한 주된 요인도 천연두나 인플루엔자, 홍역 같은 구세계의 병원균이었습니다. 반면 남북 아메리카로부터 유럽으로 건너간 살인적인 주요 질병은 단 한 종도 없었다고 해요. 왜 남북 아메리카에서는 치명적인 대중성 유행병이 발생하지 않았을까요? 남북 아메리카에도 아스텍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과 같은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도시가 있었는데도 말이죠. 가장 근접한 답은 가축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유라시아와 달리 남북 아메리카에는 단 5종의 동물 밖에는 가축화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9장에서 언급했듯이 가축화할만한 야생동물이 소수였기 때문이죠.
무기류, 기술, 정치조직 등에서 유럽인들은 그들이 정복한 비유럽인들에 비해 크나큰 이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유라시아가 가져다준 병원균에 대한 언급없이 그같은 이점만으로 소수의 유럽 이주민들이 어떻게 신세계의 수많은 원주민들을 교체할 수 있었는지를 완전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제 12 장 : 식량생산 창시와 문자 고안과의 밀접한 관계
문자는 무기, 세균, 중앙집권적 정치조직 등과 함께 정복활동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세운 제국을 통치하는 일도 문자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죠. 그렇다면 이렇게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문자를, 어떻게 어떤 민족은 발달시키고 또 어떤 민족은 그렇게 못한 것일까요?
문자체계를 완전히 새로 만들어내는 일은 다른 문자를 빌려다가 고쳐 사용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순전히 자기들만의 능력으로 문자를 만들어낸 경우는 인류역사상 몇 번 밖에 없었다고 해요. BC 3,000년경의 수메르인의 설형문자와 이집트 문자, BC 1,300년 이전의 중국문자, BC 600년 이전의 멕시코 인디언 문자 정도가 그랬을 가능성이 있는 예라고 하네요. 독립적으로 발생한 문자가 그토록 드문 이유는 첫째, 문자를 고안해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둘째,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문자 때문에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낼 기회가 견제되기 때문이라고 해요. 쉽게 빌려쓸 수 있는데 굳이 어렵게 만들 필요를 못느끼는 거죠.
초기의 문자는 정치제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문자의 사용자들은 식량을 생산하는 평민들에 의해 비축된 잉여식량을 먹고 살던 전업관료들이었습니다. 수렵채집민 사회는 문자를 사용할만한 제도적인 쓰임새도 없었고, 필경사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필요한 잉여식량을 조달할 수 있는 사회구조도 갖추어져 있지 못했죠. 즉, 문자의 발명과 진화에도 식량생산 여부가 필수적이었던 셈이에요. 문자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멕시코, 중국 등지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한 이유도 그 곳이 최초로 식량생산을 시작한 지역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제 13 장 :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
기술은 무기와 운송이라는 형태로 일부 민족들이 영토를 확장하고 다른 민족들을 정복하는 직접적인 수단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어째서 총포류나 철제기계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 등을 발명한 사람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사람들이 아니라 유라시아 사람들이었을까요? 이 장은 책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서 왜 기술은 각 대륙에서 그처럼 판이하게 다른 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는가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에서처럼 많은 중요한 발명품들이 필요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대부분의 발명품들은 단지 호기심에서 발명되거나 다른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후 나중에 가서 그에 맞는 용도를 찾게 된 경우들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토마스 에디슨의 축음기는 원래 음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말을 보존하는 일, 시각장애자들이 들을 수 있도록 책을 녹음하는 일 등의 목적으로 발명되었죠.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고안한 것도 원래는 광산에서 물을 퍼내기 위해서였지만 곧 방적공장에 동력을 공급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기관차와 배를 움직이게 된 것이라고 해요.
또한 에디슨이나 와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영웅도 아니었습니다. 와트의 증기기관은 토마스 뉴커먼이란 사람이 이미 만들어낸 증기기관을 고치던 중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었고, 뉴커먼의 증기기관도 영국의 토마스 세이버리나 프랑스의 드니 파팽이 이미 설계했던 증기기관의 뒤를 이은 것이랍니다. 에디슨이 발명했다는 백열전구도 실은 1841년에서 1878년 사이에 다른 발명가들이 특허를 받은 수많은 백열전구를 개량한 것에 불과했어요.
여기서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바는, 유능한 발명가들에게는 항상 유능한 선후배가 있었고, 사회가 그들의 발명품들을 이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한 발명품에 대한 수용도가 차이가 나듯 그러한 차이가 대륙적 규모로 존재한다면 일부 대륙에서 기술이 더 빨리 발달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죠.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던 과거의 몇몇 사회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사회들의 경우 신기술은 발명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회에서 빌려온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독립적으로 발명되는 속도보다 전파되는 속도가 더 빠르니까요. 어떤 사회가 확산을 통하여 다른 사회로부터 기술을 받아들이는 일은 그 사회가 처한 지리적 입지에 따라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근대사를 살펴볼 때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되어 있던 사람들은 태즈메이니아 원주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고립된 대륙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160Km나 떨어진 섬에서 살았죠. 태즈메이니아인들은 10,000년 동안이나 다른 사회와 접촉하지 못했으므로 스스로 발명한 것이 아니면 신기술을 얻지 못했습니다.
확산을 통해 발명품들을 가장 잘 습득할 수 있었던 사회는 당연히 주요 대륙에 속해 있던 사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라시아 대륙은 주요축이 동서방향이므로 한 지역에서 받아들인 발명품이 비슷한 위도와 기후를 지닌 다른 지역으로 비교적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반면 남북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주요축은 남북방향이어서 전파에 방해가 많았죠. 예를 들어 바퀴는 중앙 아메리카에서 발명되었고 라마는 BC 3,000년 이전에 안데스 중부에서 가축화되었지만 그후 5,000년이 지난 뒤에도 남북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짐을 나르는 짐승과 유일한 바퀴는 서로 만나지 못했어요. 두 지역 사이의 거리는 유라시아에서 바퀴와 말을 공유했던 프랑스와 중국 사이의 거리보다 훨씬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제 14 장 : 평등주의부터 도둑정치까지
제3부의 마지막 장인 14장에서는 정치체제의 차이에 대해 설명합니다. 저자는 가장 원시적인 사회형태인 무리사회로부터 시작하여 부족사회, 추장사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라는 단위까지를 비교 설명하는 데에 이 장의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요. 그리고 질문합니다. 혈연중심의 소규모 사회들은 무슨 이유로 서로 가까운 관계도 없이 중앙집권화가 된 대규모 사회로 발전하게 되었는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대규모 인구 또는 조밀한 인구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식량생산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집약적 식량생산과 사회적 복잡성은 자가촉매작용을 일으키게 된다는 설명이에요. 또한 사회가 대규모화되고 복잡해지면 서로 무관한 구성원들간의 갈등해소를 위해서, 그리고 효과적인 의사결정과 경제적 재분배를 위해서 중앙집권화가 될 수 밖에 없다고 하네요. 이렇게 해서 효율적인 사회를 이루게 되면 더 나은 기술을 발전시키고 더 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게 됨으로써 자신보다 열등한 사회를 무너뜨릴 수도 있게 되어 정복이나 합병을 통해 사회적 규모와 복잡성은 계속 상승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른바 진화론적 논리입니다. 어쩌면 정치나 국가간의 관계뿐 아니라 오늘날 경제와 사회문화 대부분의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을 언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