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제1부) : 인간사회의 다양한 운명의 갈림길
이번에 소개할 책은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라는 사람이 쓴 「총,균,쇠」입니다. 오늘날 세계에 존재하는 불평등의 원인을 생태학, 지리학, 인류학, 언어학 등에 의한 종합적인 접근을 통해 규명해 보고자 한 현대의 고전이죠. 번역자는 이 책의 의의를 칼 세이건 교수의 「코스모스」에 비교할만하다고 적었네요.
프롤로그
저자는 1972년 여름 뉴기니 섬의 어느 해변을 걷다가 얄리라는 원주민에게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문명의 도구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것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이 질문을 확대시키면, “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이 유럽과 아시아 민족들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상황으로 역사가 전개되어 왔는가?”라는 의문에 봉착하게 되죠. 이러한 역사의 불균형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 이 책의 저술목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서양의 백인들이 흔히 제시하는 인종간, 혹은 민족간의 능력차이 이론을 반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어요. 이미 서론에서 친절하게도 이 긴 책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제 1 부] : 인간사회의 다양한 운명과 갈림길
제 1 장 : 문명이 싹트기 직전의 세계상황
저자는 각 대륙의 역사전개를 비교하기에 가장 적합한 출발선을 BC 11,000 년경으로 잡고 있는데 이 장에서는 그 이전까지의 인류역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합니다. 주목할만한 시점은 약 50,000년 전의 이른바 “대약진” 시기입니다. 이때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이 등장하여 그 이전까지 살았던 다른 인류를 대체하게 되죠. 이 시기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사건은 그때까지 사람이 살지 않던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에 사람들이 이주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는 점이에요. 이 일은 그때까지만 해도 다른 대륙과 비슷하게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에도 많이 서식하던 대형 야생동물들이 멸종당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왜냐하면 다른 대륙에서는 야생동물들이 수십만 년에서 수백만 년 동안 인류와 함께 살아오면서 인간에 대한 공포심을 진화시켜 왔는데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에서는 그럴만한 충분한 기회가 없었던 까닭에 발달된 사냥기술을 가지고 갑자기 접근해온 인류에게 쉽게 멸종당하게 된 것이죠. 그 말은 이 대륙에서 장차 가축화가 될만한 대형 야생동물이 모조리 사라졌다는 의미이고, 그 결과 다른 대륙보다 발전의 측면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된 것입니다. 그 이후 남극 대륙을 제외하고 가장 늦게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남북 아메리카도 똑같은 운명을 맞게 됩니다.
제 2 장 : 환경차이가 다양화를 빚어낸 모델 폴리네시아
저자는 이 장에서 환경이 역사의 발전속도에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를 소개합니다. 1835년 뉴질랜드 동쪽 채텀제도에 오랫동안 거주하던 모리오리족이 인근 뉴질랜드 북섬의 마오리족에 의해 정복당하고 무자비하게 학살당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두 부족은 모두 AD 1,000년경에 뉴질랜드로 이주한 폴리네시아 농경민의 후손들이었으나 그 섬에 계속 남아있던 마오리족은 농사에 적합한 환경에서 집약적인 농업을 발전시키며 더 복잡한 기술과 정치적 조직을 갖게 된 반면 근처 채텀제도에 이주한 모리오리족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더 단순한 기술과 조직으로 후퇴하였죠. 이와 같은 정반대의 전개과정이 충돌의 결과를 결정지은 것입니다. 이 두 부족의 역사는 환경이 인간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단기간, 소규모의 자연발생적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 3 장 :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힘의 원천
이 장에는 구대륙(=유라시아)과 신대륙(=아메리카) 사이에 있었던 상징적인 사건이 소개되어 있어요. 1532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페루의 카하마르카에서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를 만난 사건이에요. 겨우 168명의 군사를 거느린 피사로가 막대한 병력을 거느리고 있던 잉카제국의 안방에서 아타우알파를 인질로 잡아 엄청난 몸값을 뜯어낸 후 처형해 버렸죠. 저자는 왜 아타우알파의 대군이 피사로의 병사들을 물리치고 승리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결과가 나왔는지, 나아가 어째서 아타우알파가 스페인에 가서 스페인 왕을 사로잡지 못하고 반대로 스페인의 장군이 카하마르카에 와서 잉카의 황제를 생포하는 일이 일어났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첫째로, 엄청난 수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피사로가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전투장비에 있어서의 현격한 차이 때문이었죠. 스페인 군사들이 사용했던 총과 말, 갑옷이나 예리한 금속무기 등은 갑옷도 없이 곤봉으로 싸우는 잉카 병사들을 압도했습니다. 그리고 전투장비 못지않게 중요했던 요인이 있는데 바로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이에요. 전투가 있기 얼마 전부터 이주해왔던 서양인들이 그런 병균들을 원주민들에게 옮겼고, 면역성이 없었던 잉카제국의 여러 통치자들이 이미 죽거나 병에 걸림으로써 제국의 힘은 분열되고 약화되어 있었다고 하네요.
둘째로, 왜 잉카의 장군이 스페인에 가서 스페인 왕을 사로잡지 못하고, 스페인 장군인 피사로가 카하마르카에 와서 잉카 황제를 사로잡게 되었을까요? 배와 항해기술의 발달, 배의 건조와 운영에 필수적인 중앙집권적 정치조직, 그리고 항해와 군사작전에 필요한 지식을 전달해주는 문자체계의 유무 등이 스페인과 잉카제국의 운명을 갈랐다고 설명합니다. 책의 제목인 「총,균,쇠」는 지금 언급한 요인들을 함축하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