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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전염병과의 싸움에 대한 어느 도시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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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ng&cucumber 2020. 4. 2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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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입니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많이 언급된 작품이죠. 소설의 서술자는 이 글이 194×년 프랑스령 알제리 해안에 위치한 오랑이란 도시에서 발생한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시작합니다. 카뮈는 알제리 출생이고, 특히 오랑에서도 한동안 살았던 경험이 있다고 하네요. 작가의 상상력으로 빚어진 가상의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마치 실제로 일어난 일을 보고하듯이 기록했다는 면에서 르포르타쥬 문학의 형식을 빌리고 있어요.

 

 

1

 

의사인 베르나르 리유는 그 해 416일 아침 자기 진찰실 계단에서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목격합니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에도 집 앞에서 커다란 쥐가 피를 토하고 죽는 장면을 보게 되죠.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도시에 죽거나 죽어가는 쥐들이 출몰하게 됩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서 어떤 날은 하루에 8,000여 마리의 쥐들의 시체가 수거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 이후 죽은 쥐들의 숫자가 줄어들어 시민들이 안도하는가 싶은 와중에 리유가 거주하는 집 건물의 수위인 미셸 영감부터 페스트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죠. 결국 이 불쌍한 노인은 페스트로 인한 최초의 희생자가 됩니다.

 

여기저기서 희생자가 늘어가자 리유는 이것이 페스트의 발병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리유가 강력하게 요청하여 도청에서 보건위원회가 소집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2개월 내에 도시 인구의 절반이 희생될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도지사와 다른 많은 사람들은 주저하면서 최소한의 조치만을 취합니다. 시민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면서 충실하게 병균을 옮기고, 그 결과 발병자와 사망자 숫자가 급증하자 도청은 뒤늦게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는 폐쇄되면서 제2부가 시작됩니다.

 

 

2

 

도시의 폐쇄로 인해 시민들이 겪었던 첫 번째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생이별이었다고 서술자는 적고 있어요. 사실 리유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어요. 그의 아내는 일 년째 병을 앓고 있는데 페스트가 생기기 직전에 치료를 위해 도시 바깥의 한 요양소로 떠난 후 서로 만날 수 없게 돼요. 대신 리유의 어머니가 집안일을 돌보기 위해 당분간 리유와 함께 머물게 되죠. 리유의 경우가 그랬듯이 도시 외부에 있는 가족이나 애인들과의 만남이나 편지 교환이 단절됨으로 인해 시민들은 정서적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차차 식량 보급의 부족이나 휘발유와 전기 사용의 제한 조치 등이 뒤따름에 따라 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게 되죠.

 

도시가 폐쇄된 지 3주가 지났을 때 레몽 랑베르란 사람이 리유를 찾아와서는 자기가 페스트에 걸리지 않았다는 증명서를 한 장 써달라고 부탁합니다. 랑베르는 파리의 한 신문사에 근무하는 기자인데 취재차 오랑에 왔다가 갇히게 된 것이죠. 그는 파리에 두고 온 아내에게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리유에게 토로해요. 하지만 리유는 자기 직무상 써줄 수 없다고 거절하죠.

 

하지만 나는 이 고장 사람이 아닌데요!”

지금부터는 유감입니다만, 선생은 이 고장 사람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가 원하고 선택해서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아요. 그야말로 그런 상황에 던져진것이죠. 리유와 랑베르의 이 대화는 그런 실존적 상황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리유는 사실 랑베르 말고도 매일매일 개인적 사정을 봐달라고 울고불고 애원하는 환자들과 가족들을 대면하면서 살고 있어요. 리유의 주된 업무가 치료하는 일이 아니라 격리시키는 일이라고 느껴지기도 하는 그런 상황이 지속되죠. 리유로부터 거절당한 랑베르는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부탁을 해보지만 누구로부터도 시원스런 대답을 얻지 못하고 자포자기의 시간에 빠져듭니다. 사실 오랑시를 빠져나가려는 사람은 랑베르 뿐만은 아니었어요. 6월 말의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자 희생자들은 매주 칠백에 가까운 숫자로 늘어나면서 도시는 절망감에 휩싸이고, 종종 폐쇄된 시의 출입문에서는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하죠.

 

페스트에 빠져든 오랑시의 모습을 세세한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사람은 기자인 랑베르가 아니라 리유와 또 한 명의 인물 장 타루라는 사람이에요. 타루는 페스트 발생 몇 주일 전부터 오랑시의 한 호텔에 거주하고 있는 젊은 외부인인데 이 시기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자기 의견까지 곁들여 수첩에 기록해 나가요. 어느 날 타루는 리유를 찾아와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보건대를 조직하자고 제안합니다. 리유는 그 일을 하다가 살아남을 확률은 1/3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경고한 후 제안을 수락하죠. 보건대는 도시의 위생조건을 갖추는 일이나 의사의 치료활동을 돕는 일, 환자나 사망자를 운반하는 일 등을 담당하게 되고 여러 명의 자원자를 받아들이죠. 그런 인물 중 한 사람이 조제프 그랑이라는 사람이에요. 그랑은 50대 나이의 시청 서기인데 젊은 시절 잔이란 여자와 결혼했다가 헤어진 경험이 있어요. 그는 아직까지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헤어진 아내에게 보낼 편지를 완성하기 위해 밤마다 글을 다듬는 일을 해요.

 

페스트 발생 후 한 달이 되어갈 무렵 그 지역 고위 성직자 모임에서는 특별기도 주간을 설정하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파늘루라는 예수회 신부에게 설교를 맡깁니다. 파늘루 신부는 설교에서, 페스트는 하나님이 세상에 내리시는 징벌이며 신앙을 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돌이키려는 신의 메시지라고 많은 시민들에게 선포하죠.

 

선생님은 신을 믿으시나요?”

 

파늘루 신부의 설교가 있은 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타루가 리유에게 질문합니다. 리유는 믿지 않는다고 대답하면서 자기는 질병의 의미를 증명하기 전에 우선 치료부터 할거라고 말하죠. 타루는 리유가 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헌신적으로 대하는지 궁금하게 생각해요.

 

한편 랑베르는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서는 도저히 오랑시를 빠져나가 수 없음을 깨닫고 뇌물을 통한 불법적인 방법까지 시도하게 되지만 계속 좌절을 겪습니다. 그리고 페스트와 승산 없어 보이는 싸움을 벌이는 리유와 타루를 이해하지 못하죠. 그러다가 리유 역시 아내와 서로 떨어져 있는 채 남을 위해 헌신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자기도 도시를 탈출할 때까지 보건대에서 활동하게 해달라고 리유에게 부탁합니다.

 

 

3

 

8월 들어 더위와 질병이 절정에 달합니다. 이 기간의 특징적인 모습들이 제3(가장 짧아요)에 묘사되어 있는데 서술자가 기록하고 있는 그런 특징들 중 한 가지가 점점 증가하는 페스트 사망자들에 대해 취해지는 신속하고도 비인간적인 매장 절차입니다. 이 부분을 읽다 보면 고통과 공포 앞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공감하게 돼요.

 

 

4

 

9월과 10월 두 달 동안 도시의 질병 상황은 제자리걸음을 계속하고 리유와 친구들은 피로감에 지쳐갑니다. 그 도시에서 지치거나 실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면 코타르라는 인물이에요. 그는 과거에 저지른 어떤 범죄가 발각되어 목을 매려다가 이웃에 사는 그랑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진 적이 있는 인물이에요. 페스트로 인해 도시가 폐쇄되어 있는 동안에는 밀수업을 통해 큰 이득을 취하게 돼요. 페스트가 그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된 셈이죠.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이 페스트가 물러간 것을 기뻐할 때 반미치광이 짓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고 맙니다. 코타르는 이처럼 기쁠 때와 슬플 때를 다른 모든 사람들과 반대로 살아가는 부정적이고 반사회적인 인물이에요. 어느 사회에서나 이런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인가 봐요.

 

한편 랑베르는 그동안 공을 들여온 탈출계획이 잘 성사되어 무사히 아내를 만나러 가게 되는가 싶었지만 막판에 생각을 바꾸게 돼요. 도시를 빠져나가기로 약속된 날 저녁 그는 탈출을 포기하고 보건대에 남아 끝까지 페스트와 싸우기로 결심합니다. 의아해하는 리유와 타루에게 그는 말하죠.

 

나는 늘 이 도시와는 남이고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나 이제 볼대로 다 보고 나니,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나도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어요. 이 사건은 우리들 모두에게 관련된 것입니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적 공익 중에 어느 것이 우선인가는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작가는 랑베르의 태도의 변화와 선택을 하나의 예로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나중에 랑베르는 페스트가 끝나고 도시의 문이 다시 개방되었을 때 아내와 기쁨의 포옹을 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선택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됩니다.

 

소설 전체에서 가장 읽기에 고통스런 부분은 도시의 예심판사 오통 씨의 어린 아들이 죽어가는 장면이에요. 이미 병세가 악화되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리유는 동료 의사 카스텔이 만든 혈청을 이 아이에게 시험해 보기로 합니다. 혈청을 투약받은 아이는 다른 환자들보다 오랜 시간 사지가 뒤틀리는 고통 속에 신음하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해요. 그리고 아이가 그렇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리유와 친구들은 왜 죄 없는 아이마저 이런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야 하는지 괴로워하고 절망해요.

 

이 자리에는 파늘루 신부도 있었는데 이 사건 이후로 그의 태도가 달라지게 돼요. 그는 페스트가 발병한 직후 행했던 첫 번째 설교를 반성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두 번째 설교를 합니다. 페스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가는 이 시점에서는 모든 것을 믿든지 혹은 모든 것을 부정하든지 해야 한다고, 즉 신을 혐오하든지 아니면 신을 사랑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도전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고통 속에 죽어갔던 어린아이처럼 고통의 십자가 아래에 머물러 있겠다고 다짐하죠. 또한 만약 페스트에 걸리더라도 자기는 의사의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며칠 후 파늘루 신부는 고열로 앓아눕고 병세는 급속하게 악화되어 가지만 결심대로 의사의 진료를 거부합니다. 회복의 가망이 사라진 때쯤 리유에게 연락을 취하는데 리유가 진찰하기에 파늘루 신부의 증세는 페스트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태였어요. 마침내 그는 십자가를 꼭 쥔 채 죽음을 맞이하고 리유는 환자 기록카드에 병명 미상이라고 적습니다.

 

소설 전체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파늘루 신부의 사망원인이에요. 그는 다른 환자들처럼 페스트로 인해 죽은 것일까요? 이에 대해 작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요. 다만 타루가 리유에게 한 다음과 같은 말에서 약간의 암시를 느끼게 될 뿐이죠.

 

죄없는 사람이 눈알을 잃었을 때 기독교인으로서는 신앙을 잃거나 눈알이 빠지거나 해야 마땅하죠. 파늘루는 신앙을 잃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 갈 데까지 갈 거예요.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겁니다

 

어느 날 타루는 페스트와의 힘겨운 싸움을 함께 하는 동지인 리유에게 자기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해요. 검사였던 자기 아버지가 죄인들에게 종종 사형선고를 이끌어 내었으며 심지어 사형이 집행되는 장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기조차 했다는 사실, 나중에는 자기도 직접 사형집행을 목격하면서 사형제도와 싸우기 위해 정치운동에 뛰어든 일, 한 마디로 자기는 세상에서 인간의 행복을 방해하는 모든 문제에 맞서는 일에 있어서 연대의식을 느끼며 살고 있고 페스트와 맞서 싸우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라는 것 등등. 그러면서 타루는 신 없이 성자가 되는 것이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라고 말하죠. 두 사람은 대화를 마치고 함께 바닷가에 가서 수영을 즐기며 잠시나마 페스트를 잊고 행복감을 느낍니다. 남녀간의 연애에 대한 스토리 하나 없는 이 소설에서 리유와 타루가 서로에 대해 우정을 느끼며 함께 수영을 하는 이 장면은 아름다워요.

 

12월이 되어 첫 추위가 찾아오지만 성탄절이 될 때까지도 페스트는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아요. 그러던 어느 날 그랑이 페스트 증세를 보이며 앓아눕게 되고 리유가 보기에 하룻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은 상태가 되죠. 그랑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내 잔에게 보내려고 밤마다 문장을 매만지며 고쳐왔던 글을 불태워 버립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병세가 회복되고, 비슷한 일이 주위에서 몇 건 더 발생하죠. 페스트 병세의 후퇴가 시작된 겁니다.

 

 

5

 

이듬해 1월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동안 페스트는 3주 연속 하강세를 보이고 그 달 25일 시 당국은 의사협회의 자문을 거쳐 페스트는 저지되었다는 발표를 합니다. 하지만 도시의 문들이 열리기 며칠 전 타루가 페스트 증세를 보여요. 리유는 처음으로 격리원칙을 어기고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그를 치료하기로 하지만 타루가 고통과의 싸움 끝에 숨을 거두는 것을 지켜보게 돼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는 아내가 요양소에서 죽었다는 전보를 받게 됩니다. 사랑을 사랑답게, 우정을 우정답게 체험할 시간도 없이 아내와 친구가 죽어간 것에 리유는 큰 슬픔을 느끼죠.

 

2월의 어느 날 시의 문들이 마침내 열립니다. 그동안 생이별하며 지내야 했던 사람들이 재회하며 도시의 거리는 기쁨으로 넘치게 되죠. 이 소설이 발표된 때는 1947년이지만 처음 구상된 것은 1930년대 후반부터였고 그 직접적인 계기는 2차 세계대전이었다고 해요. 작가가 체험한 전쟁이라는 참담한 상황을 전염병이라는 또 다른 고통스럽고도 비인간적인 상황에 투영시켜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죠. 소설의 이 마지막 부분은 마치 승전국에서 벌어지는 기쁨의 축제를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반면 만나야 할 사람들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 어머니들, 배우자들, 애인들에게는 오히려 슬픔이 절정에 달한 순간으로 변해버리죠. 그러한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리유는 자기가 이 글의 서술자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페스트균은 소멸된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다가 언젠가는 반드시 깨어날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기록으로 남긴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리유의 이 마지막 경고야말로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우리가 귀기울여 들어야할 메시지가 아닐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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