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소설이에요. 오늘 소개하려는 조지 오웰의 「1984」말이에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그린 선구적 작품인데 소설 속에 그려지는 내용들이 그냥 허구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끔찍해요.
소설의 줄거리는 1984년의 어느 시기엔가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그리고 있어요. 소설 속에서 세계정세는 세 개의 초강대국이 대치 중인데 오세아니아는 그 중의 하나예요. 이 나라는 빅 브라더라는 이름을 가진, 실재하는지 가상의 인물인지도 분명치 않은 독재자에 의해 지배되고 있어요. 어디를 가든지 커다란 빅 브라더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가 붙어 있는데 얼굴 아래에는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요.
오세아니아는 간부급인 극소수의 내부당원들, 전문직에 종사하는 외부당원들, 그리고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하층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주인공 윈스턴은 진리부라는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39세의 외부당원이에요. 소수의 내부당원 외에는 모두 빈곤한 생활을 하며 살고 있는데, 윈스턴도 예외는 아니어서 식사는 항상 맛도 영양가도 없는 음식으로 제공받고, 비누나 면도날 같은 생활용품은 늘 부족하여 여기저기서 빌려야 하는 처지죠.
경제적인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당이 추진하는 국민들의 사고의 빈곤과 획일화예요. 새로운 사전을 편찬하는 어느 친구(동지라고 부르죠)와 윈스턴과의 대화에 이러한 문제가 잘 묘사되어 있어요. 이 사전에서는 "좋은(good)"이란 단어의 반대말로 "안좋은(ungood)"이란 단어만 남기고 "나쁜(bad)"이라거나 기타 다른 단어들을 모두 없애버려요. 어휘의 숫자를 줄임으로써 사고의 폭을 좁히고 사상적인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죠. 빅 브라더와 당은 언어가 완성될 때 혁명도 완수될 것이라고 주장해요.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윈스턴이 일기를 적는 행위는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그는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피해 매일 조금씩 일기를 쓰고 있어요. 집집마다, 실은 국토 어디에나 설치되어 있는 텔레스크린은 직사각형의 금속판으로 되어 있는 기계인데 사람들의 속삭이는 정도를 넘어서는 모든 소리를 포착하고, 컴컴할 때를 제외한 모든 동작 하나하나를 감시해요. 만약 일기를 쓰고 있다는 것이 발각된다면 사형이나 적어도 강제노동 25년형은 받게 되는 위험스런 일이에요. 빅 브라더는,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라는 슬로건 아래 모든 기록들을 통제하고 사람들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모든 기억들까지 없애버리려고 하고 있어요. 이런 사실에 적개심을 품고 윈스턴은 일기에 "빅 브라더를 타도하자"라고 적게 돼요.
어느 날 윈스턴은 반역자 골드스타인에 대한 증오심을 고취시키는 "이분 증오"라는 모임에서 오브라이언이라는 인물에 주목하게 돼요. 오브라이언은 내부당원인데 윈스턴은 그가 자기처럼 빅 브라더를 마음속으로 미워하고 있다고 직감하죠. 오브라이언은 나중에 소설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 모임에서 윈스턴은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을 만나는데 바로 줄리아라는 여자예요. 줄리아는 윈스턴과 같은 외부당원으로 검은색의 단발머리를 한 26세의 매력적인 여자예요. 윈스턴은 처음에 이 여자가 당에 충성하는 열혈당원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나중에 그녀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녀 역시 자기와 똑같이 당의 강령에 대한 불만을 숨긴 채 거짓 충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소설의 가운데 부분에 해당하는 제2부는 윈스턴과 줄리아와의 사랑과 밀회를 주로 묘사하고 있어요. 오세아니아는 당원들의 결혼과 성적 욕구까지 통제하고 있는 사회예요. 윈스턴은 캐서린이란 여자와 결혼까지 한 사이지만 그녀가 당에 대한 의무로 자녀를 낳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멀어져 있는 상황이에요. 그런 윈스턴에게 젊고 매력적이며 생각까지 비슷한 줄리아와의 사랑은 삶의 탈출구 역할을 하죠. 둘은 당의 감시를 피해 둘만의 밀회의 장소를 마련하는 등 더욱 대담하게 관계를 지속해 나가요. 언젠가는 발각될 것을 예상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육체적 욕망에 탐닉하죠. 그렇게 두 사람은 두려우면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낸답니다.
마침내 윈스턴과 줄리아는 중대결심을 하고 함께 오브라이언의 집을 방문해요. 그리고 그 곳에서 소문으로만 알고 있던 형제단이라는 비밀조직에 가담하죠. 윈스턴과 오브라이언은 어둠이 없는 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집니다. 그러나 뒤에 가면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이 생각한 것처럼 빅 브라더에 저항하는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당의 핵심인물이며, 그가 말한 어둠이 없는 곳이란 불빛이 환하게 밝혀진 고문실을 가리키는 것임이 드러나게 되죠.
결국 윈스턴과 줄리아의 관계가 발각되면서 3부가 시작돼요. 3부의 내용은 윈스턴의 생각을 바꾸어 놓으려는 오브라이언의 설득과 고문,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윈스턴의 투쟁을 그리고 있어요. 이 과정에서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이 칠 년 전부터 확대경으로 딱정벌레를 관찰하듯 자기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는 자기가 행동하거나 입 밖에 낸 말들을 모두 알고 있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심지어는 무슨 꿈을 꾸었는지조차도 환히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윈스턴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있는 일 없는 일 다 자백하게 돼요. 하지만 오브라이언은 자백과 항복을 받아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윈스턴을 "치료"하고자 해요. 당에 대한 충성심과 빅 브라더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친 사람으로 개조시킨 후 마지막에 총살에 처하는 것이 모든 사상범들이 거치는 과정인 것이죠. 그래도 윈스턴은 줄리아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결심해요. 줄리아는 자기를 배신했다는 말을 듣게 되지만 윈스턴은 자기의 사랑과 신념을 지키려고 해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말살하려는 당과 오브라이언에 대해서, 줄리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저항이라고 생각하죠.
작품의 결말은 절망적이에요. 윈스턴은 101호실로 끌려가요. 101호실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는 앞부분에서부터 조금씩 암시가 되어 있는데 개인마다 종류가 다른 가장 공포스런 고문이 가해지는 곳이에요. 해리포터를 보신 분들이라면 "보가트"를 떠올리시면 이해가 쉽겠네요. 윈스턴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쥐였어요. 자기의 얼굴을 향해 달려들려는 쥐들 앞에서 윈스턴은 결국 마지막 신념을 포기하고 외치죠.
"제게 하지 말고 줄리아한테 하세요! 그 여자한테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어요!"
윈스턴은 석방되고 얼마 후에 우연히 줄리아를 만나게 돼요. 하지만 사랑의 포옹 대신 서로가 서로를 배신했다는 고백과 의미없는 몇 마디 대화만 주고 받은 후 헤어져요. 마침내 윈스턴은 부질없이 고집부리며 살아온 40여 년의 세월을 회개하고, 또 한편으로는 빅 브라더에 대한 사랑으로 행복감을 느끼며 총살을 당합니다.
반전이 없는 결말을 끝으로 책을 덮으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되었어요. "저자는 정말로 독자들에게 아무런 희망도 남기고 있지 않은 걸까?" (...) 절망의 분위기가 자욱할수록 희망의 촉수를 곤두세우고 살펴보니 다음과 같은 전언을 발견하게 되네요.
첫째, 윈스턴은 미래의 희망이 지배계급인 당원들에게가 아니라 프롤이라고 불리우는 노동자들에게 있음을 깨닫게 돼요. 비록 대부분의 당원들은 그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지만요. 자연스런 감정에 겨워 노래를 흥얼거리며 빨래를 널고 있는 가난한 아낙네를 바라보면서 윈스턴은 확신해요. 가난한 노동자들이 결국은 빅 브라더와 당을 붕괴시킬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둘째, 소설 속에는 윈스턴이 어머니를 회상하는 내용이 종종 등장해요. 그의 어머니는 죽는 순간까지 이기적인 아들 윈스턴을 사랑했으며 기꺼이 자식을 위해 희생했다는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요. 자기와 줄리아가 실패했던 그 자리를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기억이 채우고 있어요. 아무리 무자비한 권력이 인간성을 말살시키려고 해도 끝끝내 파괴되지 않고 우리의 존재에 생명력과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진정한 사랑의 능력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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