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독자의 관심을 확 끌어당기는 작품들이 있는데 이 소설이 그런 면에서 손꼽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체코 출신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입니다. 세계적인 작가이면서 특히 한국에 많이 소개되어 읽히는 작가이고, 이 소설은 그의 대표작입니다. 줄거리는 토마시와 테레자, 그리고 프란츠와 사비나, 이렇게 주요인물 네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전개됩니다. 총 7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간 순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각 인물들을 중심으로 마치 씨줄과 날줄이 서로 교차되듯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소설은 토마시와 테레자의 만남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어느 시골의 술집에서 처음 만난 후 열흘쯤 지났을 때 정사를 나누게 되고, 테레자는 짐을 싸들고 자기가 살던 곳에서 200 km나 떨어져 있는 프라하로 토마시를 찾아옵니다. 프라하에서 유능한 의사로 살아가고 있는 토마시는 이미 10년 전쯤 첫 번째 아내와 2년간의 결혼생활 후 이혼한 상태였고, 여자를 갈망하기는 했으나 동거하는 일에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 타협점을 스스로 ‘에로틱한 우정’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찾았는데, 그런 신조 하에 그는 수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가지면서도 동거나 결혼의 관계까지는 이르지 않죠. 그는 한밤중에 자기 옆자리에 누군가 누워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고, 그래서 여자들과 관계를 가진 후에는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집으로 돌려보내고 함께 잠을 자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테레자만은 예외였죠. 둘은 토마시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테레자는 토마시가 자기뿐 아니라 화가인 사비나를 비롯하여 여러 여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자주 악몽을 꾸기도 하고, 심적인 고통으로 괴로워합니다. 토마시는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그렇하고 해서 다른 여자에 대한 욕정을 자제할 힘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바람기는 점점 더 심해져 갑니다. 그는 테레자의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결국 자기의 신조를 어기고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고 카레닌이란 강아지도 선물합니다. 이 카레닌은 마지막까지 테레자의 친구로 남습니다.
그런 와중에 1968년 봄, 소련이 무력으로 프라하를 점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비나의 소개로 어느 잡지사에 취직해 있던 테레자는 프라하 거리에 주둔해 있는 소련군들의 사진을 찍으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맛보기도 하지만 체코 정부가 소련에 굴복하자 결국 토마시와 테레자는 카레닌을 데리고 스위스 취리히로 이주합니다. 토마시는 그곳에서 의사 일에 몰두하지만 한편으로는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이미 스위스에 와 거주하던 사비나를 다시 만나 정사를 벌이죠. 테레자는 결국 취리히에 온 지 6개월쯤 지났을 때 떠난다는 편지 한 통만 남긴 채 카레닌을 데리고 프라하로 돌아옵니다. 토마시는 처음에는 미안함을 느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결혼생활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맛봅니다.
“그와 테레자와의 사랑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피곤하기도 했다. 항상 뭔가 숨기고, 감추고, 위장하고, 보완하고, 그녀에게 동기를 주고, 위로하고,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질투심과 고통과 꿈에서 비롯된 비난을 감수하고, 죄의식을 느끼고, 자신을 정당화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했다. 이제 피곤은 사라지고 아름다움만 남았다.”(p.54)
그러나 그런 달콤함도 잠간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그는 테레자에 대한 그리움 및 연민에 시달리고, 결국 취리히의 의사 일을 그만두고 테레자를 찾아 프라하로 돌아옵니다.
1부가 주로 토마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면, 2부는 테레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불행한 결혼생활의 영향으로 스스로를 파괴하며 살아가던 어머니에 의해 정서적 학대를 받아가며 성장했습니다. 성인이 되어 술집에서 맥주잔을 나르는 일을 하면서도 그녀는 항상 책 읽기를 하나의 도피처로 삼았고, 자유로운 삶과 신분 상승을 꿈꾸었습니다. 어느날 술집에서 토마시를 만났을 때 그녀는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합니다. 작가는 그녀가 토마시를 처음 보았을 때의 상태를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합니다.
“테레자는 자신의 영혼이 그 남자에게 모습을 드러내려고 그녀의 모든 정맥, 모세 혈관, 모공을 통해 표면으로 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p.86)
토마시도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프라하로 떠나기 전 자신의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건네주었고, 테레자는 운명에 이끌리듯이 토마시를 다시 찾아가게 되죠. 두 사람은 다시 만난 지 일 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불같은 정사를 나누고, 테레자는 이제 절대로 그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테레자는 사비나의 소개로 어느 잡지사에서 일자리를 얻었을 뿐 아니라 직접 사진을 찍어 전시도 하면서 행복한 젊은 시절을 보냅니다. 1968년 소련이 체코를 침공했을 때 그녀는 일주일 동안 거리를 돌아다니며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소련군들의 사진을 수백 통이나 찍습니다. 그리하여 그녀가 찍은 위협적인 탱크와 파괴된 건물, 피묻은 시체들의 사진들이 외국 신문에 실리게 되고, 그녀는 지배체제 하에서 위험인물이 됩니다. 그리고 신변의 안전을 위해 토마시와 함께 스위스 취리히로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취리히에 온 후 그녀는 무기력한 조국과 토마시의 여전한 바람기 때문에 절망감을 느끼죠. 테레자는 결국 애완견 카레닌만 데리고 토마시를 떠나 프라하로 돌아옵니다. 다시는 토마시를 안보리라고 다짐했으나 토마시는 닷새 만에 테레자에게로 돌아오고, 테레자는 자기 곁에서 자고 있는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행복감을 느낍니다.
3부는 또 다른 한 쌍인 프란츠와 사비나의 이야기입니다. 프란츠는 제네바에 살고 있는 대학교수로서 미남이며 학계에서도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20년 전에 마리클로드라는 여자와 결혼했지만 아내에 대한 그의 감정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존중에 가까웠습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그의 나이 열두 살쯤에 남편에게 버림받은 어머니에 대한 연민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자기도 모르게 남녀관계에서 책임과 정조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게 되었죠.
반면 토마시의 여자친구이기도 했던 사비나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울타리 쳐왔던 보수적인 가정의 분위기 때문에 항상 그 울타리를 넘어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동경하였고, 배신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태도가 그녀 안에 자리잡은 데에는 당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제도화했던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이 또한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프란츠는 젊은 시절 파리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뭔가를 기념하고, 뭔가를 요구하고, 뭔가에 대해 항의하는 것이 좋아 보였습니다. 생제르멩 거리에서 바스티유 광장까지 길을 가득 메우고 춤추며 외쳐대는 행렬에 매료되었죠. 반면 사비나는 학창 시절 공산주의 체제의 조국에서 강제적으로 동원되어 행진하곤 했기에 그런 것들을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달랐죠.
사비나와 불륜의 관계 가운데 지내던 프란츠는 어느 날 더 이상 허위 속에서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결심하고는 아내에게 사비나와의 관계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홀가분하게 사비나만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비나는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사라져버린 프란츠와의 관계에 싫증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를 영원히 떠나죠. 그러나 프란츠는 이상하게도 자기가 그리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녀(사비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들 사랑을 위해 매번 가슴 조이던 때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신으로 변모한 사비나와 함께 있을 때가 더 행복했다. 그녀는 혼자 사는 남자의 자유를 불쑥 선물하면서 그에게 매력의 후광을 씌워주었다. 그는 여자들에게 매력적인 남자로 변했다. 그의 여학생 중 하나가 그에게 반해버렸다. 이렇듯 믿지 못할 정도로 짧은 순간에 인생의 모든 무대 장치가 갑작스레 바뀌었다”(p.199)
사비나는 프란츠를 떠나 파리로 이주합니다. 그녀의 삶은 부모와 조국, 그리고 애인에 대한 배신의 연속이었고, 그런 경험들이 그녀를 들뜨게 하고 흥분시켰지만 이제 더 이상 배신할 것이 남아 있지 않게 되자 공허감을 느낍니다. 파리에 온 지 2-3년쯤 되었을 때 토마시의 (전 아내의) 아들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습니다. 그 편지에는 토마시와 테레자의 죽음 소식이 적혀 있었죠. 사비나는 죽은 토마시를 그리워했고, 제네바에 있는 프란츠는 떠난 사비나를 그리워하죠. 물론 그의 어린 여자 친구와는 여전히 즐겁게 지냈지만.
이야기는 토마시와 테레자가 사망하기 전, 즉 취리히에서 프라하로 돌아와 함께 생활하던 시점으로 돌아갑니다. 그중에서도 이 4부는 테레자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테레자는 돌아온 후에 프라하 변두리 어느 호텔의 바텐더로 일하게 됩니다. 과거에 소련 탱크를 사진 찍고 다녔다는 이유로 이전 잡지사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죠. 취리히에 돌아온 후에도 토마시의 바람기는 여전해서 테레자는 고통스러워합니다. 토마시는 사랑과 성행위는 별개라는 생각을 테레자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하지만 그녀는 거부합니다. 그러던 중 테레자는 자기에게 친절히 대해주는 어느 기술자의 초대를 받고 그의 집을 방문해서는 정사를 나눕니다. 토마시에 대한 복수심이 많이 작용한 결과였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내면에 잠들어있던 은밀한 욕망을 확인하며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테레자는 그 기술자를 다시 만나고 싶어하지만 그는 다시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 안 나타나는 것일까? (...) 프라하 전체가 소련군에 의해 감시당하는 상황이었기에 테레자는 자기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모종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어느 휴일 토마시와 테레자는 프라하를 벗어나 어느 시골로 소풍을 갔다가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즐거운 시간을 갖습니다. 테레자는 그런 곳에서 생활하는 것이야말로 토마시의 여성 편력을 잠재우고, 자기를 위협하는 음모의 손길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확신하고는 토마시를 설득합니다.
“밭고랑 사이를 뛰어가는 토끼, 초록색 펠트 옷을 입은 산지기, 숲 위로 솟은 교회 종탑. 그녀는 우리 두 사람이 프라하를 떠나야만 한다고 토마시에게 말하고 싶었다. (...) 그녀는 시골로 가서 살아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p.280)
이번에는 같은 시기의 토마시의 이야기입니다. 토마시는 취리히에서 프라하로 돌아온 이후 과거에 몸담았던 병원에 복귀하여 뛰어난 외과 의사로 일합니다. 그러던 중에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어느 잡지사에 투고하죠. 하지만 얼마 후 소련군이 프라하를 점령하고, 그 잡지 기사 때문에 토마시는 병원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됩니다. 의사를 그만두고 그가 대신 선택한 일은 건물의 유리창 닦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렵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그 일을 그는 긴 휴가라고 받아들입니다. 그가 유능한 외과 의사였다는 사실을 잘 아는 고객들, 그중에서도 특히 여자 고객들은 그에게 친절과 환대를 베풀고, 토마시는 테레자와 동거하면서도 더 많은 여자들과 정사를 나눕니다.
그러나 그렇게 2년 정도가 지나면서 토마시는 이 ‘휴가’도 이젠 힘겹다고 느낍니다. 힘든 육체노동뿐 아니라 지나친 여자관계 때문이기도 했죠. 그리고 그런 토마시 때문에 테레자도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테레자는 함께 시골로 떠나자고 제안합니다.
“토마시는 진짜 시골로 가서 살면 어떨지를 상상해 보려고 애썼다. 시골 마을에서는 일주일마다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의 에로틱한 모험의 종말일 것이다.”(p. 375)
6부는 프란츠의 이야기입니다. 파리에 있던 프란츠는 어느 날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캄보디아에서 개최하는 행진에 참여해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당시 캄보디아는 공산주의자들의 끔찍한 만행을 겪은 후 소련의 하수인이었던 베트남에게 점령당한 상태였습니다. 더구나 기근과 질병이 만연해서 사람들은 치료도 못받고 죽어가고 있었죠. 국제의사조직이 여러 차례 입국을 요청했으나 베트남인들은 이를 거부했고, 그래서 저명한 서방 지식인들이 캄보디아 국경에 모여 행진을 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이목을 끌고 의사들의 입국을 실현시키고자 계획한 것이죠. 프란츠는 처음에는 동거하는 어린 여학생 때문에 부탁을 거절했으나 소련에 의해 자유를 제한당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캄보디아는 사비나의 또 다른 조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리고 친구들의 전화와 요청이 이미 자유로운 삶을 찾아 미국에 가있던 사비나의 은밀한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상상 때문에 결국 행진에 합류하기로 결정합니다.
수백 명의 지식인들과 의사들, 유명 가수와 배우들, 그리고 각국에서 온 기자들이 모여 행진을 했으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프란츠 역시 행진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무렵 그곳에서 강도를 만나게 되고 한 병원에서 말없이 죽어가는 처지가 됩니다. 죽어가는 남편의 눈에서 아내 마리클로드가 읽은 것은 자기를 버린 남편이 뒤늦게 그녀에게 구하는 용서였으나, 실은 프란츠가 죽어가면서 끝까지 보고 싶어 했던 사람은 어린 여자친구였죠.
마지막 7부는 토마시와 테레자, 그리고 반려견 카레닌의 이야기입니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마침내 작은 시골 마을에 정착합니다. 테레자는 술주정뱅이가 우글거리는 술집과, 토마시를 유혹하는 여자들이 있는 도시로부터 떠나게 되어 행복해합니다. 경찰도 더 이상 그들을 감시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 역시 시골에 정착하려고 온 사람들의 정치 이력 따위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죠.
가장 행복한 것은 카레닌이었습니다. 카레닌은 테레자가 하루 두 번씩 송아지들을 풀 뜯으려 풀밭으로 데려갈 때 동행하면서 송아지들을 감시했으며, 마을의 마스코트였던 메피스토라는 새끼 돼지와도 친구가 되죠. 그러나 얼마 후 카레닌이 암에 걸린 사실을 발견하고 토마시는 마을의 한 수의사와 함께 직접 수술을 합니다. 그러나 병은 치료되지 않고 점점 악화되어 갑니다. 카레닌은 함께 산책하는 것도 힘들어했고 신음소리를 내며 구석에 누워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집니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카레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안락사를 시키기로 결심합니다.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지만 더는 늦출 수 없었기에 토마시와 테레자는 직접 카레닌에게 주사 약물을 투입한 후 미리 정해 두었던 정원 구석에 묻어줍니다.
어느 날 테레자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젊다고 할 수 없는 토마시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취리히에 머물며 유능한 의사로 살아갈 수 있었던 그를 프라하로 오게 만들어 일자리를 잃게 한 것도,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를 질투하여 시골 생활을 하게 만든 것도 다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죠. 그리고 자신의 요구에 그대로 따라준 토마시의 사랑에 비로소 고마움을 느낍니다.
소설 속에는 이 작품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 듯한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사중주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그 악보에는 베토벤 자신이 적어 넣은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문장과 “그래야만 한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고 하는데, 무슨 심오한 철학적 명제처럼 보이는 이 문장들이 사실은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운명적으로 보이는 토마시와 테레자의 관계 역시 실은 몇 가지 우연적 요소의 결합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당시 소련에 침공당하여 지배를 받고 있던 조국 체코의 상황 역시 어떤 역사적 필연성과는 별 상관이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하죠. 우리의 삶은 마치 출렁거리는 바닷물결에 이리저리 떠밀리는 부표처럼 지극히 작고 가벼운 존재라는 의미에서 작품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이런 허무주의적 분위기로 전개되지만, 토마시가 수많은 여성 편력에도 불구하고 테레자를 떠나지 않고, 테레자 역시 마지막까지 토마시와의 관계에서 행복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소설은 따뜻하게 마무리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23장에는 우리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인간을 네 범주로 나누어 설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익명의 무수한 시선, 다시 말해서 대중의 시선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간형입니다. 연예인들 같은 경우가 대표적으로 이런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다수의 친한 사람들의 시선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지칠 줄 모르고 파티나 만찬의 기회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로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프란츠의 아내 마리클로드가 이런 유형에 속합니다. 세 번째 유형은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속에서 사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 감기면 이들의 삶의 무대는 칠흑과 같은 어둠에 빠지게 되죠. 테레자와 토마시가 이 범주에 속할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부재하는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 속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몽상가들이죠. 아주 드문 유형인데 소설 속의 프란츠가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사비나의 시선이 자기에게 향해 있기를 희구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유형에 속하고 작품 속의 누구와 닮아있습니까?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