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학작품이 특정 장소와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예가 종종 있습니다. 『폭풍의 언덕』을 읽으면 영국 요크셔 지방의 황량한 언덕이 떠오르고, 까뮈의 『이방인』이란 소설은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바닷가와 연결되듯이. 마찬가지로 오늘 소개할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있으면 그리스란 나라, 특히 그중에서도 에게 해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크레타 섬을 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솟구칩니다.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裸身)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p.26)
그리스의 국민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전적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화자인 나는 어느 항구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면서 과거에 이 항구에서 둘도 없는 친구인 스타브리다키와 작별하던 일을 회상합니다. 그 친구는 멀리 카프카스에서 러시아 혁명 때문에 위험에 처해 있는 그리스 동포들을 구하러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그때 친구는 나에게 함께 가자고 권했으나 나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헤어지면서 우리는, 누구라도 죽음의 위기를 맞거든 상대를 아주 강렬하게 생각해서 자기의 위험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텔레파시 게임을 약속했습니다. 친구는 떠났으나 헤어지기 전 그가 나를 책벌레라고 부른 것은 기억에 남아서 계속 나를 괴롭혔죠, 그리고 마침내 종이와 잉크가 아닌 행동하는 삶으로 뛰어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향인 크레타 해안에 폐광이 된 갈탄 광산 한 곳을 임차합니다. 노동자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로 한 것입니다. 조르바를 처음 만난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는 큰 키의 60대 남자였는데, 세상을 적잖게 돌아다닌 뱃사람 신밧드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광부로서의 경험도 있었기에 광산 일에 도움이 될 것도 같고, 무엇보다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인 그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어 광산 인부들의 감독자로 채용합니다.
크레타에 도착한 조르바와 나는 늙은 과부 오르탕스 부인의 여인숙에 머무르게 됩니다. 오르탕스 부인은 터키와 전투를 벌일 당시 크레타에 주둔해 있던 유럽 함대의 제독들을 접대하던 매춘부로서 이곳에 눌러 앉게 되었는데, 조르바와 일찌감치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어 버립니다. 수없이 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며 나이를 먹어왔지만 아직까지도 여자에 대한 욕망은 조르바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조르바는 후끈 달아 있었다. 왼손으로는 수염을 꼬고 있었고 오른손은 술과 추억에 취한 여가수를 더듬었다. 말은 어눌했고 눈은 게슴츠레했다. 그가 눈앞에 보고 있는 것은 반쯤 미라가 되고 화장을 치덕치덕한 늙은 여자가 아니라, 그가 입버릇처럼 여자를 지칭할 때 쓰는 <암컷들> 전체였다. 개별적 존재는 사라지고 개별적 특징들은 말소되었다. 젊었느냐 늙었느냐, 아름다우냐 추하냐 따위는 하등 중요할 것 없는 차이일 뿐이었다. 모든 여자 뒤에는 위엄이 있고 신성하고 신비스러운 아프로디테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p.63-64)
이윽고 광산 일은 시작되고 조르바는 일에 열중합니다. 나는 밤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그를 기다렸다가 함께 저녁을 먹은 후 그가 세상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겪은 이야기를 듣는 일에 흠뻑 빠져 지냅니다. 크레타로 들어올 때 나는 붓다에 관해 기록해왔던 미완성 원고를 가지고 왔었는데, 7년의 고뇌 끝에 해탈한 붓다의 지고한 정신적 희열을 체험하고 언어로 옮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조르바를 만난 후 그러한 노력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찾는 사람이라면, 조르바는 슬플 때 산투르라는 악기를 연주하고, 기쁠 때에는 온몸으로 격렬한 춤을 추어 표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온몸으로 삶을 살아가는 그가 나는 부러웠죠.
“나는 인생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레를 찾아, 내가 배운 것과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깡그리 지우고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 저 위대한, 저 진정한 알파벳을 배울 수 있다면...!”(p.110–111)
어느 날 조르바는 광산에 관한 자기의 계획을 나에게 들려줍니다. 인근 수도원 소유의 소나무 숲을 빌려서 산꼭대기에서 해안까지 고가 케이블을 설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케이블과 도르래를 이용하여 갱도를 버틸 목재를 운반하면 훨씬 수월하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고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날 이후 조르바는 일을 마치고 오두막에 오면 모형 케이블을 만들어 목재의 하강 속도를 완화시켜 줄 경사각도 찾는 일에 골몰합니다.
어느 날 조르바와 나는 마을의 모든 남자들을 홀리고 있다는 소멜리아라는 젊은 과부를 보게 됩니다. 과연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남자의 마음을 휘어잡을만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죠. 하지만 나에게 갈탄 광산을 임대해 준 마을의 지주 마브란도니 영감은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의 아들 파블리가 그녀 때문에 상사병이 들렸는데 정작 소멜리아는 파블리를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이죠. 젊은 과부를 본 후 조르바는 나에게 과부집을 찾아가 잠자리를 같이 하라고 권유합니다. 자기 처지에는 분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습니다. 나도 역시 그녀를 향해 강렬한 욕망을 느꼈지만 조르바의 권유를 들은체 만체 해버립니다. 하지만 젊은 과부의 유혹적인 자태는 내 생각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가지고 싸워보려고 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죠.
광산 작업이 진척되지 않고, 가지고 있던 자본도 거의 바닥날 즈음 조르바는 계획했던 케이블 설치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칸디아라는 도시로 떠납니다. 사흘을 기한하고 갔으나 그곳에서 롤라라는 앳된 창녀와 놀아나느라고 가지고 갔던 돈을 흥청망청 써버리고 열이틀 만에 돌아옵니다. 괘씸한 마음에 장난 반 복수심 반으로 나는 오르탕스 부인에게 조르바에 대한 거짓말을 잔뜩 늘어놓습니다. 즉, 조르바는 칸디아에 가서도 오르탕스 부인 생각 뿐이었고 돌아오면 즉시 청혼할 계획이라고. 내 말을 듣고 오르탕스 부인은 기쁨에 벅차오릅니다.
조르바가 돌아오기 직전 마을에 큰 사건이 터집니다. 젊은 과부 때문에 상사병을 앓던 파블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파블리의 가족들과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모두 젊은 과부를 저주하며 복수심이 끓어오르는 모습을 목격한 후 나는 그녀에게 사람을 보내 사람들의 분노가 잦아들 때까지 당분간 바깥출입을 삼가라고 말해줍니다.
칸디아에서 돌아온 조르바와 함께 나는 케이블 설치 계약서에 서명을 받기 위해 수도원으로 향합니다. 가는 도중 수도원에서 쫓겨난 자하리아라는 반 미치광이 수도승을 만나서 동행하게 되는데, 조르바는 그 수도승을 이용하여 유리한 계약을 얻어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자기가 칸디아에서 흥청망청 써버린 7천 드라크마를 벌충하려는 것이었죠. 도착한 수도원은, 풍광으로는 방문자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거룩한 곳이었으나 그곳에 거주하는 수도승들은 위선에 가득찬 땡중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머무는 동안 수도승들이 동성연애 행각을 벌이고 자기들끼리 살인을 저지르는 일까지 목격하게 됩니다. 조르바의 표현대로 소돔과 고모라가 따로 없었죠. 그러나 조르바는 그런 상황을 빌미로 수도원장을 협박해서 유리한 계약을 성사시킵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자하리아를 충동질하여 수도원에 불을 지를 계획까지 세웁니다.
마을로 돌아온 즉시 조르바와 오르탕스 부인은 약혼식을 올립니다. 내가 엉터리로 지어낸 거짓말 때문에 오르탕스 부인은 약혼반지까지 만들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죠. 약혼식을 마친 후 조르바는 케이블 설치작업에 파묻혀 지냅니다. 직접 측량하고 계산한 수치에 기초하여 15 미터마다 구덩이를 파고 기둥을 세우도록 인부들을 독려하면서 해안에서 산꼭대기까지 일직선으로 케이블을 만들어 나갑니다.
부활절 기간에 조르바가 마을 사람들과 축제를 즐기러 간 사이 나는 혼자 산책하다가 젊은 과부의 집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는 하룻밤을 함께 보냅니다. 다음날 행복감에 젖어 오두막으로 돌아와서는 이미 완성해 놓은 붓다의 원고를 바라보며 해방감을 느끼게 됩니다.
“나는 이러한 내 번뇌의 우상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넘어섰고, 붓다에 대한 복무도 완수한 것이었다. 나 역시 손을 들어 내 안을 채우고 있던 붓다에게 흩어질 것을 명하였다. 나는 황급히, 언어와 언어의 도액하는 능력의 도움을 빌려 붓다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유린하였다. 나는 마지막 구절을 원고에다 서슴없이 휘갈기고 한소리를 지르고 나서 붉은 연필로 내 이름을 큼지막하게 썼다. 그로써 끝이었다.”(p.344)
마을 사람들이 모두 광장에 모여 춤추며 즐기고 있는 사이 젊은 과부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오렌지꽃 한 다발을 성당에 바치려고 왔으나 그만 발각되고 맙니다. 과부 때문에 자기 아들을 잃은 마브란도니 영감을 비롯해서 흥분한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돌을 던지기 시작하고, 영감의 지시를 받은 그의 조카 마놀라카스가 손에 칼을 들고 과부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 순간 조르바가 달려와 마놀라카스의 칼을 빼앗고 둘은 격투를 벌입니다. 조르바가 놀라운 힘으로 젊고 덩치가 큰 마놀라카스를 제압하고 과부를 구하려는 순간 마브란도니 영감이 과부의 목을 베어버립니다. 그날 밤 조르바는 내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불의와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을 저주합니다. 그리고는 슬픔을 잊기 위해 미친 듯이 일에만 매달려 지내죠.
과부의 죽음으로 망연자실하게 지내는 동안 오르탕스 부인이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 고난 주간 내내 조르바를 위해 기도 드리려고 매일 자정예배에 참석했다가 그만 감기에 걸렸던 것이 갑자기 악화된 것입니다. 조르바와 나는 그녀의 임종을 지키고, 가족도 없던 그녀가 죽자 마을 사람들은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라도 차지하기 위해 상가집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장례를 마치고 오두막으로 돌아온 조르바가 묻습니다.
“<두목, 제발 설명해 주시오.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오랜 세월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어요.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3톤은 족히 씹고 또 씹었을 거예요! 거기에서 뭔가 얻어 낸 게 있을 것 아닙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너무나도 깊은 비통함이 묻어 있어서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아, 이 사람에게 대답할 능력이 내게 있었다면!”(p.385)
드디어 철탑과 고가 케이블이 완성되어 개통식을 갖게 됩니다. 거대한 소나무 목재들을 산꼭대기에 쌓아 놓고 개통식 시간에 케이블에 매달아 해안으로 내려보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이 끝나면 참석한 손님들이 음식과 술로 우리의 성공을 축하해 줄 참이었죠. 그러나 개통식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됩니다. 조르바가 몇날 며칠 동안 끙끙거리며 계산했던 경사각도가 전혀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식이 시작됨과 동시에 케이블 고가선을 통해 차례로 내려보낸 서너 개의 거대한 통나무들은 엄청난 속도가 붙더니 결국 철탑과 케이블을 다 망가뜨리고 맙니다. 축하해주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도 혼비백산 다 도망쳐 버리고 나와 조르바 둘만 남아서 옛날 이야기를 나누며 준비했던 포도주와 음식을 다 먹어치우죠. 그리고 자기 실수로 인해 벌어진 비극에 어색해하는 조르바에게 내가 부탁합니다.
“조르바! 이리 와보세요! 춤 좀 가르쳐 주세요!”
조르바가 펄쩍 뛰어 일어났다. 그의 얼굴이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다.
“춤이라고요, 두목? 정말 춤이라고 했소? 야호! 이리 오쇼!”
“조르바, 시작해 봐요! 내 인생은 바뀌었어요! 자, 한번 달려 봅시다!”(p.414)
나는 비록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 순간 진정한 해방감을 맛보게 됩니다. 외적으로는 참패했을지라도 내적으로는 승리자일 때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긍지와 환희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그때 깨닫죠. 다음 날 때마침 위험에 처한 동족을 구하기 위해 카프카스로 갔던 친구 스타브리다키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수만 명의 그리스인들을 안전하게 탈출시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역시 나와는 다른 이유에서 행복감에 취해 있었죠. 하지만 행복감에 젖어 잠이 든 사이 친구에 대한 악몽을 꾸게 되고, 친구와 헤어질 때 했던 약속을 떠올립니다. 누구라도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되면 상대를 강렬하게 생각해서 자기의 위험을 알려주기로 한 약속을. 그리고 며칠 후 스타브리다키가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전보를 받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은 조르바와 헤어진 이야기, 그리고 그후 5년 동안 여기저기에서 편지로 자기 소식을 전해온 조르바의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소식이 뜸하다가 하루는 조르바가 꿈속에 나타납니다. 스타브리다키에 대한 꿈과 그의 죽음이 연결되어 있듯이, 조르바 역시 지구 어느 곳에선가 죽어가고 있다는 징후로 이해하게 되죠. 그 꿈을 꾸고 나서 얼마 후부터 나는 조르바에 대한 기억을 글로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몇 주 만에 조르바의 연대기가 완성되고, 완성된 직후 편지 한 장이 내 앞으로 배달됩니다. 조르바가 죽어가면서 유언으로 남긴 말을 누군가 글로 옮겨 적은 편지였습니다. 조르바는 최후의 순간까지 어느 그리스 친구를 생각했다고. 그리고 자기가 죽은 뒤에는 늘 지니고 다녔던 악기 산투르를 그 친구에게 전달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조국 그리스는 찬란한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며 현대 유럽 문명의 젖줄 역할을 한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근대에 들어서는 여러 열강들의 침략 때문에 고난을 겪어야 했던 아픈 역사도 지니고 있죠.
작가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는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구원에 도달하려고 하는 인물입니다. 나는 또한 불교적 세계관에도 깊이 심취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명확한 진리나 확신에도 이르지 못하죠. 그런 중에 조국과 민족을 위해 결단하고 행동하는 친구를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살과 피로 배우며 고스란히 맨몸으로 살아온 조르바를 통해 서서히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조르바는 실제로 작가 카잔차키스가 만나 교우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던 실존인물이기도 합니다.
소설 속에는 어린 시절 우물 속 풍경에 매혹되어 빠져 죽을 뻔한 사건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어린 나는 하마터면 우물에 빠질 뻔했다. 자라서는 <영원>이라는 단어에 거의 빠질 뻔 했다. 또 <사랑>, <희망>, <국가>, <하느님> 같은 숱한 단어에도 빠질 뻔했다. 그 단어 하나하나를 정복하고 지날 때면 나는 흡사 위험에서 빠져나와 전진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나는 겨우 단어를 바꾸어 놓고 그것을 구원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2년 전부터는 <붓다>라는 말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이제 확실히 느낀다. 조르바 덕분이다. 붓다는 최후의 우물, 마지막 낭떠러지가 될 것이며, 이제 나는 영원히 해방될 것이라고.”(p.253-254)
처음 책을 읽고 나서는 화자인 나와 조르바 사이의 상충되는 세계관을 대비시켜 그려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다시 한번 읽을 때에는, 특히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는 우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행동하는 지성의 소유자 스타브리다키와의 우정,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도, 성향도, 살아온 경험도 완전히 다른 조르바와의 감동적인 우정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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