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꽤 유명한 도입부로 시작하는 소설 「오만과 편견」이 오늘 소개할 작품입니다. 작가 제인 오스틴은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으나 섬세한 필치로 남녀의 심리 및 당시 영국의 연애와 결혼 풍습을 작품 속에 잘 묘사한 작가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공 베넷 가족이 사는 롱본 마을 인근의 네더필드에 미혼이고 잘 생긴데다 재산까지 많은 빙리라는 젊은이가 이사를 옵니다. 결혼 안한 다섯 명의 딸들을 키우는 베넷 부부는 빙리가 자기 딸들 중 한 명과 결혼했으면 하는 바램을 품게 됩니다. 베넷 씨의 재산은 연 수입 2천 파운드의 토지가 전부였는데 다섯 명의 딸들을 부양하고 결혼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고, 더구나 아들이 없는 탓에 그가 죽으면 먼 친척 되는 남자에게 모든 재산이 한정 상속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얼마 후 열린 마을 무도회에 빙리는 네더필드의 자기 집에서 함께 지내려고 와있는 다아시라는 친구를 데려오는데, 처음에는 빙리 못지않은 그의 외모와 훨씬 더 많은 재산으로 인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들을 무시하는 듯한 그의 거만한 태도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눈밖에 나게 됩니다. 빙리와 다아시는 여러 면에서 성격이 반대였는데 빙리가 시원스럽고 유연하여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스타일이라면 다아시는 까다롭고 콧대가 높아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간에 돈독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었죠.
베넷 부부의 첫째 딸 제인과 둘째 딸 엘리자베스도 성격이 꽤 달랐는데, 제인이 남의 흠 잡는 것을 싫어하고 모든 사람을 좋게 보는 성향을 가진 반면 동생 엘리자베스는 언니보다 관찰력이 예리하고 깐깐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두 자매는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아껴주는 관계였습니다. 엘리자베스가 보기에 빙리는 자기 언니 제인을 좋아하고 있었고, 제인 역시 빙리를 흠모한다는 사실에 마음 흐뭇한 나머지 정작 다아시가 자기에게 호감을 품게 되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다아시는 겉으로는 무관심한 듯 대했으나 엘리자베스의 지적인 면모와 장난기 많은 생기발랄한 모습에 매혹된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비사교적인 모습이 오만한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본심을 전혀 파악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빙리의 여동생, 그러니까 빙리 양의 초대를 받고 네더필드에 놀러갔던 제인이 심한 감기에 걸려 그곳에 며칠 머물게 되고, 걱정이 된 엘리자베스가 그곳에 가서 언니를 간호하며 함께 지내게 됩니다. 엘리자베스가 네더필드에 머무는 동안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게 더욱 마음이 끌리고, 정작 그녀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으나 다아시를 내심 좋아하던 빙리 양은 여성 특유의 직감으로 다아시의 진심을 알아채고 질투를 느낍니다.
어느 날 베넷 집안에 그때까지 한번도 본적 없던 먼 친척 콜린스 씨가 찾아옵니다. 콜린스는 베넷 씨가 죽게 되면 베넷 부인과 다섯 명의 딸들 대신 베넷 집안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어 있는 25세의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다아시의 이모뻘 되는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의 후원을 받아 지역 교구의 목사가 되었는데 마땅한 신부감을 얻기 위해 베넷 씨를 방문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불공평한 상속문제에 대해 베넷 집안의 여인들에게 자기가 베풀어줄 수 있는 관대한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빙리와 예사롭지 않은 관계에 있던 제인을 제외하고 순서 면에서나 외모 면에서 다음인 엘리자베스를 신부감으로 혼자 점찍어 버립니다. 콜린스라는 인물에 대해 말하자면 성직자로서의 권위의식과 자만심, 그리고 하나님보다 후원자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에 대한 숭배의식과 비굴함 등이 마구 혼합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베넷 집안의 딸들은 메리턴에 거주하는 이모 집을 방문하러 갔다가 그곳 부대로 새로 오게 된 위컴이라는 장교를 만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는 그가 다아시와 어린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낍니다. 위컴은 엘리자베스에게, 다아시의 부친이 자기의 대부였다는 것, 그 분이 돌아가시면서 자기에게 안정된 수입이 보장된 성직자 직을 남겨 주었으나 다아시가 질투심 때문에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렸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엘리자베스는 그의 예의바른 말투와 세련된 매너에 호감을 느끼게 되고, 더욱이 이미 갖고 있던 다아시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으로 인해 위컴의 말을 너무도 쉽게 믿어버립니다.
콜린스는 예정된 체류기간을 마치기 전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하지만 거절당합니다. 딸들을 안정된 직업과 재산을 가진 남자에게 시집보내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인 베넷 부인은 엘리자베스를 설득하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 결혼이 자기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을 확신했고, 모든 면에서 엘리자베스 편인 베넷 씨도 그녀의 결정에 찬성합니다. 청혼이 거절당한 콜린스는 재빨리 대상을 바꾸어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에게 청혼하고, 엘리자베스와는 달리 샬럿은 단지 재산과 사회적 지위 만을 보고서 흔쾌히 수락합니다. 단지 며칠 만에 대상을 바꾸어 청혼을 하는 콜린스와, 그런 사실을 다 알면서도 수락하는 샬럿을 보면서 엘리자베스는 황당해하고, 베넷 부인은 남편이 죽게 되면 한정 상속자인 콜린스와 샬럿에게 자기 집안 재산이 넘어가게 될 것을 생각하며 상심에 빠집니다. 한편 제인은 빙리가 갑자기 네더필드를 떠나 런던에서 지내게 되었을 뿐 아니라 당분간 돌아올 계획이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빙리 양에게서 받고 자기가 괜한 기대를 품었던 것이 아닐까 불안해 합니다.
베넷 부인의 남동생과 올케로서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가드너 부부가 롱본을 방문합니다. 가드너 부인은 사려깊고 친절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제인 및 엘리자베스와는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 상대였습니다. 그녀는 엘리자베스가 위컴에 대해 섣부른 호감을 느끼고 있다고 판단하여 좀더 신중할 것을 충고하였고, 빙리 때문에 실의에 빠져 있는 제인을 위로해 주기 위해 런던의 자기 집으로 데려갑니다. 아니나 다를까 위컴이 엘리자베스에 대해 보여주었던 관심어린 태도는 갑자기 사그러들고 대신에 최근 큰 재산을 얻게 된 어느 여인에게 애정공세를 퍼붓습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이모의 충고가 효과가 있었는지 그리 큰 상처를 받지 않고 쿨하게 받아들입니다.
엘리자베스는 결혼하여 살림을 차린 친구 샬럿의 간절한 요청을 받아 헌스퍼드에 있는 그녀와 남편 콜린스 집을 방문하여 며칠간 머물게 됩니다. 사랑없는 결혼을 한 샬럿이 과연 행복한지 관찰하기도 하고, 콜린스가 그토록 칭송해 마지 않는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의 로징스 저택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영부인은 돈과 지위를 배경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하는 것이 몸에 밴 나이 든 여인이었고, 빙리 양이 장래 다아시의 신부감이라고 치켜세웠던 영부인의 딸은 예상과는 달리 조그마한 체구의 병약하고 무뚝뚝한 여인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헌스퍼드에 머문 지 2주쯤 지났을 때 다아시가 그의 사촌 피츠윌리엄과 함께 그들의 이모인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을 방문하여 로징스에 머물게 됩니다. 그 기간에 종종 로징스 저택을 방문할 기회를 얻은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영부인의 딸에 대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피츠윌리엄과 대화를 나누다가 빙리가 언니 제인을 멀리하게 된 것이 다아시의 충고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다아시의 동기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자기 집안의 낮은 신분과 어머니 및 여동생들의 교양없고 무례한 태도, 그리고 자기의 여동생을 빙리와 이어주려는 다아시의 바램 때문이었을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런데 하필 엘리자베스가 분노를 채 삭히지도 못하고 있는 때에 다아시가 찾아와 청혼을 합니다. 다아시는 그동안 자기가 그녀를 얼마나 사모해 왔는지를 열렬히 토로하고, 그의 그런 감정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엘리자베스는 충격에 빠집니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청혼을 거절하고 그 이유를 묻는 다아시에게, 빙리와 제인 사이를 갈라놓은 일이며, 위컴을 가난에 내몰리게 만든 일 등에 대해 비난을 쏟아냅니다. 다아시는 아무런 변명도 없이 자리를 떠나죠.
다음 날 다아시는 자신을 해명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자기가 빙리와 제인을 떼어놓는 일에 앞장 섰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아름답고 고귀한 제인과 달리 그녀의 교양 없는 가족들 때문에 둘도 없는 친구 빙리가 불행하게 될 것을 염려하는 마음 때문이었다는 것, 그리고 위컴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오히려 위컴이 다아시 부친의 호의와 유언을 악용해서 다아시로부터 돈을 뜯어내고, 험담을 일삼았으며, 심지어 돈을 위해 다아시의 어린 여동생을 유혹하기까지 했다는 사실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편지의 내용이 모두 핑계요 거짓말일 것이라 생각했던 엘리자베스였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그동안 자기가 다아시와 위컴에 대해 얼마나 잘못된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언니 제인의 앞길을 망친 것도 실은 다아시의 책임이라기보다 어머니와 동생들의 문제가 컸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죠.
6주간의 헌스퍼드 방문을 마치고 런던의 가드너 외숙모 집에 머물고 있던 제인을 만난 후 엘리자베스는 언니 제인과 함께 롱본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엘리자베스는 가드너 부부와 함께 외숙모의 옛고향 지역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고 도중에 외숙모의 권유로 다아시의 영지가 있는 펨벌리를 방문하게 됩니다. 다아시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주인이 집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잠간 들렀던 것인데 일정을 앞당겨 집에 돌아온 다아시와 마주쳐 버립니다. 편지를 통해 그 동안의 오해가 많이 해결된 상태였고, 또한 그 집 하인이 자기 주인을 칭찬하는 말을 누누히 들었던 터라 다아시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만약 자기가 청혼을 수락했다면 이 아름다운 저택의 안주인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그가 여전히 자기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차지하게 됩니다. 한편 여전히 엘리자베스를 잊지 못하고 있던 다아시는 매우 다정하고 정중한 태도로 그녀와 가드너 부부를 대해 주었고, 다음 날 도착할 자기의 여동생을 소개시켜 주고 싶다는 부탁을 하여 엘리자베스를 또 한번 놀라게 만듭니다.
다아시의 여동생, 즉 다아시 양은, 몸은 이미 성숙했으나 마음은 아직 여린 열여섯의 소녀였고 오빠의 간절한 기대에 따라 자기와 좋은 사귐을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엘리자베스는 기뻐합니다. 또한 다아시 양과 함께 펨벌리에 온 빙리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가 여전히 제인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아시가 과거에 자기로부터 청혼을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애정을 품고 배려해주고 있음에 감사했고, 가드너 부부도 자기 조카와 다아시와의 관계에 대해 예사롭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됩니다.
엘리자베스가 펨벌리에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제인이 편지를 통해 긴급한 소식을 전해옵니다. 막내 동생 리디아가 위컴의 유혹에 넘어가 가족 몰래 함께 사랑의 도주를 한 것입니다. 흥분한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모든 일정을 뒤로 한채 집으로 돌아갑니다. 도망친 딸을 찾기 위해 베넷 씨는 런던으로 갔지만 아무 소득없이 돌아오고, 베넷 부인은 몸져 누워버립니다. 온 가족은 차라리 리디아와 위컴이 결혼이라도 하기를 바라지만 엘리자베스는 위컴이 재산도 없는 리디아와 결혼할 리 없다고 생각하며 동생의 장래를 비관합니다. 며칠 후 런던에서 가드너 외삼촌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자기가 위컴과 리디아를 수소문하여 찾아냈으며 매우 약소한 금액만 보장해 준다면 리디아와 결혼하겠다는 위컴의 약속도 받아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가족은 모두 기뻐했지만 위컴이 요구한 금액이 당시 결혼 지참금으로서는 너무 적은 액수라서 분명 가드너 외삼촌이 막대한 금액을 위컴에게 따로 약속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리디아와 위컴은 결혼식을 올리고 위컴은 곧바로 롱본에서 멀리 떨어진 북부 지역의 새로운 부대에 일자리를 얻게 되어 떠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엘리자베스는 이 모든 일의 배후에 다아시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즉, 엘리자베스로부터 위컴과 리디아의 도주 사실을 듣게 된 직후 다아시는 런던의 지인을 통해 두 사람을 찾아냈고, 전혀 결혼할 생각이 없는 위컴을 설득하고 매수하여 그의 모든 빚을 갚아주고 새로운 근무지까지 주선해 주는 조건으로 리디아와 결혼식을 올리게 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위컴의 위선적이고 방탕한 기질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아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기에 책임감에 근거한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엘리자베스는 자기에 대한 애정 때문에 그가 이 모든 수고스럽고 굴욕적인 뒷처리를 도맡았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옆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던 가드너 부부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발전시키게 됩니다.
오랫동안 떠나 있던 빙리가 네더필드로 돌아와 몇 주간 머물 것이란 소식이 베넷 집안에 전해집니다. 제인은 설레고 당황했지만 애써 무심한 듯 행동하고, 반면 베넷 부인은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 결정되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합니다. 그리고 베넷 부인의 기대대로 빙리는 몇 번의 방문 후에 제인에게 청혼하고 제인은 행복감에 휩싸입니다.
제인과 빙리가 약혼한 지 일주일 쯤 지났을 때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이 롱본의 엘리자베스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와의 관계를 따져 물으며 물러설 것을 요구하죠. 엘리자베스는 아직 다아시와의 관계가 특별한 것은 아님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따라 자기의 행복을 결정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 대답하여 영부인을 화나게 만듭니다. 이런 엘리자베스의 반응을 영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다아시는 오히려 엘리자베스의 마음속에 자신에 대한 여지가 남아있음을 확신하고 다시 청혼을 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영부인의 방해에도 다아시의 감정이 흔들리지 않은 것에 대해 기뻐하면서 그의 청혼을 수락합니다. 그리고 리디아와 자기 가족을 위해 남몰래 헌신적인 도움을 베풀어준 것에 감사를 표합니다.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했고, 그녀가 수락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제인도, 베넷 부부도 처음에는 농담으로 여겼으나 곧 진심으로 축하해 줍니다. 베넷 부인의 경우 일년 만에 딸을 세 명이나 시집 보내게 되었다고, 그것도 둘째 사위는 거의 왕족에 가까운 신분과 재산의 소유자라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엘리자베스는 또한 이제는 털어놓아도 될 기쁜 소식을 편지에 적어 보냄으로써 가드너 부부의 의심어린 기대를 충족시켜 줍니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제인과 빙리, 그리고 리디아와 위컴의 결혼생활에 대한 후일담과, 롱본 가족들의 소식까지 적고 있는 마지막 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마무리됩니다.
“가드너 내외와 그들은 언제나 더없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엘리자베스는 물론이고 다아시도 그들을 진실로 사랑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를 더비셔로 데리고 옴으로써 그들을 맺어주는 매개가 되어주었던 두 분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언제나 더없이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지냈다.”
소설의 제목과 관련시켜 설명하자면 다아시는 오만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정직하고 높은 이상을 따라 살고자 했지만 타고난 부와 높은 신분이 자기도 모르게 그를 오만한 모습 – 특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 으로 이끌어갑니다.
“저는 이미 당신의 태도를 보고 당신이 거만하고 잘난 체하며 자기 생각만 하면서 남의 감정은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 다른 일들이 쌓이면서 그런 좋지 않은 인상이라는 토대 위에 단단한 혐오감이 자리 잡았다고 할까요. 그랬기 때문에 당신을 알게 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누가 뭐라고 해도 저는 당신 같은 사람과 결혼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P.273-274)
반면 엘리자베스는 편견을 담당하는 인물이죠. 그녀는 똑똑하고 분별력 있는 여인이었으나 다아시나 위컴에 대해 첫인상만으로 판단을 하여 잘못된 결정들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후 그런 편견들을 극복해가고 마침내 행복을 쟁취하게 됩니다. 참고로 이 소설이 처음 발표될 당시 제목이 「첫인상」이었다고 하네요.
소설 속에는 당시 사교계의 모습이나 결혼풍습 등 영국 사회의 특징들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에 한정상속과 같은 당시의 상속제도가 얼마나 불합리하고,특히 여성들에게 얼마나 공정치 못한 제도였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이 콜린스와 결혼을 결심하는 내용이 묘사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부분은 당시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콜린스 씨는 똑똑한 사람도, 함께 있기에 즐거운 사람도 분명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지루했고, 그녀에 대한 그의 애정도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그녀는 남편을 갖게 될 것이었다. 남자나 혼인관계 그 자체를 중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혼은 언제나 그녀의 목표였다.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없는 아가씨에겐 오직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대책이었고, 결혼이 가져다줄 행복 여부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해도 결혼만이 가장 좋은 가난 예방책임이 분명했다. 이제 마침내 그 예방책을 손에 넣은 것이니 스물일곱의 나이에 한 번도 예뻐본 적이 없는 여자로서는, 이번만큼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느꼈다”(P.177)
이 소설이 발표된 이후 조금씩 조금씩 그런 사회적 불평등은 개선되어져 왔지만 아직도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소설가가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겠지만 좋은 소설에는 사회 구성원의 생각과 그가 속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소설 최고의 미덕은 문장들 속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유머라고 생각합니다. 읽으면서 혼자 킥킥대며 웃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몇몇 부분을 예로 들자면,
“그리고 이 기회에 엘리자베스 양, 특히 당신께 처음 두 번의 춤을 춰달라고 청하고 싶습니다. (...) 엘리자베스는 완전히 궁지에 몰린 느낌이었다. 바로 그 첫 두 번의 춤을 위컴과 추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컴 씨 대신 콜린스 씨와 춰야 하다니! 발랄한 기질을 발휘하다 아주 폭삭 망한 꼴이었다”(P.127)
엘리자베스가 자기에게 치근거리는 콜린스에게, 교구 목사라는 직업 때문에 무도회에서 춤추는 것을 싫어할 것이라 생각하여 던진 질문에 오히려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듣고서...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이따위 일에 우리가 감사해야 하니 말이야. 행복할 가망이 거의 없는데도 결혼해야 하고, 남자의 성격이 형편없는데도 우린 기뻐해야 한다는 거지! 에이, 리디아 계집애!”(P.417)
동생 리디아가 바람둥이 위컴과 도망친 후에 위컴이 어느 정도 돈만 준다면 리디아와 결혼해줄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듣고서 엘리자베스가 불평하는 말.
“축하를 받기 위해 한번 더 수고를 끼쳐야겠소이다. 엘리자베스는 곧 다아시 씨의 부인이 될 것입니다. 가능한 한 캐서린 영부인을 위로해 주시오. 그러나 나라면 조카 편에 서겠소이다. 그쪽이 더 많이 가지고 있어요.”(P.525)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결혼 때문에 캐서린 영부인이 화가 많이 나 있다는 콜린스의 항의 편지를 받고 베넷 씨가 보낸 답장.
모든 등장인물들이 각기 독특한 캐릭터들을 뽐내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역시 주인공 엘리자베스입니다. "햄릿이 영문학의 첫아들이라면 엘리자베스 베넷은 가장 사랑스러운 딸이다"라고 한 로라 제이콥스의 말을 음미하면서 작품 속에서 이 생기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여인을 만나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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