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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까레니나』: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최고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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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ng&cucumber 2020. 12. 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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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어느 TV 프로그램에 김영하 작가님이 출연하여 무인도에 가져갈 한 권의 책으로 안나 까레니나를 꼽으신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왜 수많은 명작들을 두고 아침 드라마 같은 소설을 선택했을까 의아했는데 그런 선택을 할 사람이 김영하 작가 한 분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책의 뒷표지에만 해도, “안나 까레니나는 완전무결한 예술작품이다”(도스토예프스키), “안나 까레니나, 안나 까레니나, 안나 까레니나”(윌리엄 포크너-가장 위대한 소설 세 편을 뽑아달라는 질문을 받고) 등의 헌사가 적혀 있네요. 소설 전체는 총 8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방대한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34살의 잘 생기고 사교적인 성격의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어느 날 자기 집의 입주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운 일이 아내에게 발각되어 곤란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커녕 아내 돌리에게 더 확실하게 숨기지 못한 것을 후회하죠. 스쩨빤 아르까지치의 친구인 레빈은 아르까지치의 처제, 그러니까 돌리의 동생인 키티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레빈은 부자이긴 했으나 자기와 비슷한 신분의 다른 귀족들처럼 도시의 사교계에 출입하며 살기보다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이에요. 그는 궁핍하게 살아가는 농민들에 비해서 자신의 부가 부당하다고 느꼈고, 검소한 생활과 노동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레빈은 키티에게 청혼하지만 이미 사교계에서 잘 나가는 젊은 장교 브론스끼를 흠모하고 있던 키티로부터 거절을 당합니다. 물론 브론스끼도 키티를 좋아했지만 그의 감정은 책임감이 결여된 호감 이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키티는 몰랐죠.

 

어느날 브론스끼는 어머니를 마중하기 위해 나온 모스끄바 기차역에서 우연히 스쩨빤 아르까지치의 여동생인 주인공 안나를 처음 보게 됩니다. 안나는 오빠 부부를 화해시키기 위해 뻬쩨르부르크에서 오는 길이었는데 브론스끼는 안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한 나머지 진짜 사랑에 빠져버립니다. 그리고 그런 브론스끼의 마음을 눈치챈 키티는 충격을 받죠.

 

자기가 브론스끼와 키티와의 관계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 안나는 서둘러 뻬쩨르부르크로 돌아가려고 기차를 타지만 브론스끼는 기차에까지 따라와 동승하게 됩니다. 기차 안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된 안나는 한편으로는 불안감이나 죄책감과 아울러, 또 한편으로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안나보다 스무살이나 많은 그녀의 남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뻬쩨르부르크의 최고위급 관리였지만 안나는 여덟살 짜리 아들 세료자에 대한 애정 외에는 남편과의 가정생활에서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죠.

 

 

 

2

안나를 좇아 뻬쩨르부르크에 온 브론스키는 모든 기회를 동원하여 안나를 만나고자 노력했고, 만날 때마다 그녀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안나는 브론스끼를 볼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희열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며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안나의 남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며 경고하지만 안나는 남편에게 자기의 감정을 숨기며 점점 브론스끼와 되돌릴 수 없는 관계로 빠져들게 되고 결국 임신을 하게 됩니다.

 

얼마 후 브론스끼가 출전한 경마대회를 관람하던 중 그가 실수로 낙마하자 안나는 안절부절 못하고,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고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추궁하자 안나는 브론스끼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3

레빈은 모스끄바에서 키티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일을 잊기 위해 시골로 돌아온 후 더 농사일에 매진합니다. 이 제3부에는 레빈이 지주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농부들과 함께 직접 풀베기 작업을 하는 장면이 길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가 다른 귀족들과 성향상 얼마나 차이가 큰 인물인지를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양반이 팔을 걷어부치고 농민들과 함께 모내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레빈은 그들 사이에 섞여 앞으로 나아갔다. 풀베기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도 그는 그다지 힘든 줄 몰랐다. 비 오듯 흐르는 땀이 그의 몸을 서늘하게 식혀 주었고, 등과 머리와 걷어붙인 팔꿈치로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은 그의 노동을 한층 더 굳세고 완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뭘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게 되는 무의식 상태가 점점 더 잦아졌다. 낫이 저 혼자 풀을 베었다.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었다.”(p,466)

 

소설은 안나와 브론스끼, 그리고 레빈과 키티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그래서 만약 영화를 만든다면 로맨스 영화가 되겠지만), 러시아의 거의 모든 것이 표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방대하면서도 다양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귀족과 사교계 생활, 군대제도와 사냥, 연애와 결혼풍습, 종교와 예술 등등. 특히 작가는 레빈의 입을 통해 당시 러시아의 농업과 토지제도에 대한 여러 가지 모순과 문제점들을 드러내면서 러시아 농민들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편 그녀 자신의 입을 통해 아내의 부정을 확인하게 된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처음에는 고통스러워하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앓던 이가 빠져버린 것 같은 심정이 되었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공직과 명예가 훼손당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을까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는 결투도, 이혼이나 별거도 아닌, 결혼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안나에게 통보합니다. 반면 안나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음에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괴로워합니다.

 

 

 

4

키티와 레빈은 그녀의 언니 돌리와 스쩨빤 아르까지치 부부의 간절한 바램과 주선으로 다시 만나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을 약속합니다. 반면 브론스끼와 안나와의 관계에서는 미묘한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하죠. 서로를 사랑하긴 했지만 안나는 자신의 애매한 처지 때문에 초조한 감정이나 우울감에 빠져 브론스끼에게 자주 화를 내게 되고, 브론스끼는 자기가 꺾은 꽃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그녀를 대하곤 합니다. 얼마 후 안나는 브론스끼의 딸을 낳게 되고, 출산후유증으로 인해 위독한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녀는 모스끄바에 가있는 남편에게 자기의 상태를 알리면서 죽기 전에 찾아와 용서해 달라고 전보를 보냅니다. 전보를 받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내심 안나가 죽기를 바라지만 집에 도착하여 안나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때까지 모호하게만 받아들였던 기독교 교리와 용서의 의미를 마음 깊이 느끼며 안나와 브론스끼를 용서하죠.

 

브론스끼는 안나의 상태에 대한 절망감과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대한 충격,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에 권총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끝나버립니다. 얼마 후 안나는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다시 건강을 회복하지만 남편에 대한 혐오감 역시 다시 되살아나 그녀를 괴롭힙니다. 그리고 안나와 브론스끼는 아내를 자유롭게 놓아주기 위해 이혼을 결심한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제안을 거절한 채 외국으로 떠나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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