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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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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ng&cucumber 2020. 11. 1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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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입니다. 책이 출간된지 10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성장소설의 스테디셀러로 읽히는 작품이죠. 누구나 한 번쯤은 알을 깨뜨리고 나오는 새를 묘사하는 그 유명한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겠죠?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설 속 화자인 는 라틴어 학교에 다니고 있는 싱클레어라는 이름의 소년이에요. 싱클레어는 사랑과 엄격함이 공존하는 부유하고 신앙적인 가정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가 열 살쯤이었을 때 프란츠 크로머라는, 자기보다 나이가 세 살이나 많은 불량한 소년에게 괴롭힘을 받던 시절 싱클레어는 막스 데미안이라는 또 다른 소년의 도움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사는 도시로 이사해온 어느 미망인의 아들로서 싱클레어보다 한 학년 위였는데 풍기는 인상은 전혀 소년같지 않았고 훨씬 더 성숙해 보이는 모습이었죠. 하루는 성경 속의 인물인 카인에 대해 일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설명을 하는 그를 보며 싱클레어는 흥미를 갖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내 생각에 카인은 늠름한 젊은이였는데 그저 사람들이 그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그에게 이 이야기를 매달아 놓은거야”(p.43)

 

카인이 난폭한 살인자가 아니라 오히려 우월한 존재일 수 있다는 데미안의 생각은 기독교적 가정에서 성장한 싱클레어에게 혼란과 충격을 주었죠. 그 이후 싱클레어는 데미안에 대해 감탄과 두려움, 헌신과 거부가 미묘하게 뒤섞인 감정을 품게 됩니다. 둘은 인간의 자유의지나 성경의 교리들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는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나누게 되죠. 물론 싱클레어는 주로 듣는 쪽이긴 했지만요. 데미안의 말은 이제 막 싱클레어의 마음에서 움돋기 시작한 생각에 정확히 적중하여, 지금까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밝은 세계, 허용된 세계가 실은 세상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싱클레어는 집을 떠나 낯선 도시에 가서 새로운 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그동안 금지되어 있던 것들을 맛보면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삶을 살아가죠. 그러던 중 한 소녀를 만나 마음을 빼앗기고 사랑에 빠집니다. 비록 서로 만나거나 한번도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숭배하게 되죠. 그녀로 인해 쾌락과 방종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정결함에의 욕구, 성스러움에의 동경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또한 그녀의 모습을 그리고 싶어서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실패와 연습 끝에 얼굴 하나를 완성합니다. 전혀 베아트리체를 닮지는 않았고, 오히려 데미안이나 자기의 얼굴을 닮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신비스러운 생명력이 표현되어 있다고 여겨져 늘 곁에 두고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베아트리체에 대한 관심도 그의 생각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다시 데미안을 그리워하기 시작합니다. 데미안과의 추억을 떠올리다가 어린 시절 자기집 현관에 붙어 있던 문장 장식 속의 새의 모습을 그리게 되죠. 데미안을 처음 만나던 때에 그가 그 새를 보며 흥미로와하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에요. 커다란 알에서 나오려고 애쓰는 듯한 그 새의 그림을 데미안의 옛 주소로 보냅니다.

 

새의 그림을 보낸지 얼마 후 데미안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답장이 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아브락사스라는 이름이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의 결합을 상징한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을 때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 허용된 세계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기에게 말해주던 데미안의 말을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이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로 나아가는 것임을 직감하죠. 이때쯤부터 싱클레어의 꿈 속에 어떤 여인의 형상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어머니같아 보이지만 어머니는 아니고, 여자와 남자가 동시에 섞여 있는 것 같은 모습의 여인이 나타나 포옹하다가 잠에서 깨어나는 일이 반복됩니다.

 

싱클레어가 김나지움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기 직전 겨울에 어느 자그마한 교회 옆을 지나다가 거기서 흘러나오는 오르간 음악소리에 끌리게 됩니다. 연주자의 이름은 피스토리우스. 싱클레어는 철학과 고대 종교에 박식한 그와 함께 아브락사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활활 타오르는 불을 함께 바라보며 영혼이 고양되는 것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로 하여금 오로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만 집중하라고 격려합니다. 싱클레어는 그와의 대화가 자신의 알 껍데기를 깨뜨려 부수는 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 하기보다 단지 과거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게 피스토리우스와 멀어지면서 싱클레어는 대학에 진학하게 됩니다.

 

싱클레어는 생동감없는 대학생활과 친구들에 대해 실망합니다. 그러던 중에 운명적으로 데미안을 다시 만나게 되고 삶의 활기를 되찾습니다. 그의 집에 초청되어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처음 만나게 되는데 놀랍게도 자기의 꿈 속에 자주 나타나던 여인이 에바 부인이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녀 곁에서 싱클레어는 드디어 깊은 만족과 행복을 느끼고 그날 이후로 아들이자 연인처럼 에바 부인의 집을 드나들게 되죠. 그때 데미안은 이 세계가 몰락해가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고,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데미안의 예측대로 얼마 후 전쟁이 시작됩니다. (참고로,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하고 있던 당시 유럽은 한창 제1차 세계대전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고 하네요.) 데미안이 먼저 참전을 하게 되고, 싱클레어도 에바 부인과 작별한 후 전투에 참가하게 됩니다. 싱클레어는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알을 부수고 나오려 투쟁하는 거대한 새를 봅니다. 그리고 보초임무를 수행하던 어느 날 적의 폭격 때문에 부상을 입게 되죠. 상처를 입고 누워있는 그에게 어느 날 데미안이 찾아옵니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싱클레어는 에바부인이 전해달라는 데미안의 입맞춤을 받게 됩니다. 그때부터 싱클레어는 내면 속에서 데미안과 완전히 닮아 있는 자신의 성숙한 모습을 갖게 됩니다.

 

 

사실 소설 데미안은 명성에 비해 비판도 만만치 않은 작품이에요. 의식의 과잉 및 지나친 상징성이 소설의 이해를 어렵게 만들고 있고, 어떤 부분은 작가의 지적인 독선과 오만이 느껴져 거슬리기도 합니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마치 전쟁을 미화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계속 읽히는 이유는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은 겪게 되는 성장과정에서의 정신적 고통을 잘 그려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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