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책은 유발 하라리라는 사람이 쓴 「사피엔스」라는 책이에요. 최근 몇 년간 꽤 화제가 되었던 책이기에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셨을 거예요. 우선 책의 제목이 우리 인류의 생물학적 명칭인 “사피엔스”인 이유는, 우리만의 역사가 아닌 지구상의 다른 종들, 그리고 우리와 사촌지간인 다른 인류들 – 예를 들어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 과의 관계 가운데서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에요. 거의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이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웬만한 SF소설처럼 술술 페이지가 넘어가요. 저자의 해박한 지식, 그 지식들 틈새를 이어주는 촘촘한 상상력, 그리고 재기발랄한 문체가 비결이라 여겨져요. 우리나라 독자들이라면 번역자의 능력과 노고도 포함시켜야겠군요. 가독성이야말로 이 책의 미덕이죠.
책에 따르면 지구상에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이후 인류문화는 세 개의 혁명을 거치며 오늘날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고 해요. 차례대로 인지혁명, 농업혁명, 그리고 과학혁명이 그것이죠. 그 첫 번째인 인지혁명이란 약 7만년 전부터 3만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 및 의사소통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언어사용과 관련이 깊은 이 능력을 가지고 사피엔스는 “집단적 상상”이라는 허구와 신화를 창조하게 돼요. 그 결과 기껏해야 수백 명씩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그들이 이제는 구성원 간에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만들어 가며 수만 명 이상의 큰 공동체들을 형성하며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답니다.
또한 사피엔스는 자기들이 오랫동안 거주하던 지역을 벗어나 외부 세계로 진출하게 돼요. 이들은 낯선 환경인 호주와 아메리카, 그리고 크고 작은 여러 섬들에까지 나아가 그 곳의 생태계를 완전히 바꾸어 버려요. 오랜 시간 진화하며 적응해온 토착종들을 단기간에 멸종시켜버린 것이죠. 제1부의 내용 중 “노아의 방주”라고 이름 붙여진 부분을 읽다보면, 홀로코스트를 사죄하고 비슷한 비극이 재발되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는 독일 지식인들의 모습이 떠올라요.
농업혁명은 대략 1만년 전쯤에 이루어진 인간생활 방식의 변화를 일컫는 말이에요. 그 이전까지 인간은 자연에서 스스로 자라고 번식한 다양한 동식물을 채집하거나 사냥하며 살았어요. 하지만 농업혁명을 기점으로 사피엔스는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몇몇 소수의 동물과 식물 종의 삶을 조작하는데 쏟아붓게 돼요. 예를 들어 밀이나 쌀 같은 작물을 재배하거나 돼지, 양 같은 동물을 가축으로 사육하기 시작한 것이죠. 하지만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며 나무 열매를 따먹고 살던 인간이 한 곳에 정착해서 밀을 재배함으로써 좀더 안정되고 배부른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불행하게도 대답은 "그렇지 않았다" 예요. 밀을 재배하기 위해 더 뼈 빠지는 노동을 하게 된 반면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생활은 더 배고프고 비참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농업혁명을 가리켜 역사상 최악의 사기라고 부르는 이유가 그것이에요. 다만 농업혁명은 사람들 개개인의 삶을 개선시키지는 못했어도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사피엔스 종 전체의 관점에서는 진보를 가져다 주었다고 해요. 진화론적 측면에서의 성공은 이루었다는 것이죠.
이후 책의 내용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됨으로써 그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발명된 문화체계들을 설명하는 데 할애되고 있어요. 이를테면 집단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는 상상 속의 질서들 - 법과 규범, 종교와 신화 등과 같은 – 이나, 사회를 유지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주기 위해 사용된 문자체계 같은 것들이죠.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문제들이 있어요. 차별과 불평등한 위계질서 같은 것들이 그것이죠. 예를 들어, 귀족과 평민과 노예라든지, 흑인과 백인, 부자와 가난한 자 등의 관계처럼요. 저자는 이 부분에서 우리에게 왜 역사 공부가 필요한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사회정치적 차별에는 논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우연한 사건이 신화의 뒷받침을 받아 영속화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훌륭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만일 흑인과 백인의 구분, 브라만과 수드라의 구분이 생물학적 실체에 근거를 두었다면 어떨까? 만일 브라만이 정말로 수드라보다 더 나은 뇌를 가지고 있다면? 그렇다면 인간사회를 이해하는 데는 생물학으로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각기 다른 집단이 지니는 생물학적 차이는 사실상 무시할 만한 수준이므로, 생물학으로는 인도 사회의 곡절이나 미국 인종차별의 역사를 설명할 수 없다” (p.211)
농업혁명과 과학혁명의 사이에 끼어 있는 이 3부의 내용은 지난 3천 년간 인류 역사가 어떻게 통합의 길을 걸어왔는지를 설명하고 있어요.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세 가지 있는데, 돈과 제국주의와 종교예요.
첫째로 돈, 즉 화폐질서는 세상의 모든 문화적 차이와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시스템으로 작동해 왔어요. 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제국주의예요. 제국은 수많은 작은 문화를 융합하고 표준화하여 몇 개의 큰 문화로 만드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어요. 물론 수많은 부작용과 무자비한 억압이 수반된 상태로요. 하지만 우리가 제국주의의 나쁜 면을 부각시키고 비판할 수는 있어도 그렇게 하는 우리 역시도 제국주의의 후예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죠.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아요. 앞으로 모든 인류는 지구온난화와 같은 전 지구적 문제들을 보다 잘 해결하기 위해서 각자 민족주의를 포기하고 진정한 지구제국의 모습을 띠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예견하고 있어요.
세 번째는 종교예요. 저자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전통적인 종교 뿐 아니라 근대에 와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와 같은 무신론적 이데올로기까지를 아울러서, 종교란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한 인간의 규범과 가치 시스템이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이러한 보편적 규범과 시스템이 공동체 간의 간극을 메우고 인류 통합을 지탱하는 데 기여해 왔다는 것이죠.
과학혁명은 AD 1,500년 경쯤에 시작되어 지난 500여 년간 지속되어 오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가능하게 만들었어요. 과학혁명은 스스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에요. 과학혁명을 지식의 혁명이 아니라 무지의 혁명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죠. 다시 말해 근대 과학은 전통적인 절대 진리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 자리에서부터 출발하여 경험적 관찰과 수학적 방법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어요.
근대과학의 중요한 특징 중 한 가지는 그것이 얼마나 쓸모 있느냐 즉, 유용성 여부에 큰 의미를 두고 기술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점이에요. 과학 기술이 인류에게 새롭고 놀라운 힘을 가져다준 역사적인 사례들을 열거하면서 저자는 죽음마저도 과학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로 언급하고 있어요. 물론 아직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고 있기는 하지만요.
과학기술의 발달이 앞으로도 우리 생활의 진보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에서 저자는 낙관적이에요. 하지만 그 과정에 수반되는 부작용과 문제들을 기술할 때는 고통스러워 해요. 책의 내용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 아프게 읽은 부분은 이 제4부 중에서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의 삶”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부분이에요. 거기에는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모든 정서적, 사회적 욕구를 박탈당한 채 사육되고 있는 가축들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어요. 이 내용을 읽고 있으면 단지 모피 코트를 입지 않는 것 정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저자는 과학혁명에 대한 내용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지난 500년 동안 쌓아온 부를 통해 인류는 더 행복해졌는가?” “객관적 수치로 볼 때 전 인류가 가난과 기아, 질병과 전쟁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인들은 과거 수렵채집 시대의 우리 조상들이나 중세 시대 사람들에 비해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 즉, 발전이나 성장이 아니라 행복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이죠. 인류의 과학적 진보를 낙관하는 저자도 이 질문들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이에요. 오히려 “새로운 발명이 하나씩 이루어질 때마다 우리는 에덴의 낙원으로부터 몇 킬로미터씩 멀어질 뿐”(p.533)이라고 토로하죠.
마침내 책의 결론 부분에 도달했어요. 사피엔스는 현재, 지난 수억 년 동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지배해왔던 자연선택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스스로 지적 설계의 법칙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해요. 이대로 계속된다면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어떤 새로운 종으로, 책의 표현을 빌리면 신에 가까운 존재로 변화될 것이라고 저자는 예언하고 있어요. 저자의 국적이 이스라엘로 되어 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몸 안에 예언자의 DNA가 들어있는 것 같아요. 이 책은 2011년에 처음 출판된 이후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난 10년 동안 국내외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고 언급된 인문학 서적 중에 하나예요. 여기서 궁금한 질문 한 가지가 마음속에 떠올랐어요. 과연 한두 세대가 지난 후에도 이 책은 여전히 많이 읽히는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어렵네요. 아무나 예언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닌가 봐요.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