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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살만한 세상의 조건은 무엇인가?(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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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ng&cucumber 2020. 9. 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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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입니다. 처음으로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에 대해 글을 쓰네요. 지금부터 5년쯤 전에 한 일간지에서 이 소설을 소개하는 짧은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종종 출현하는 폭발적인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출간된지 40년 동안(이 소설은 1976년에 처음으로 책으로 나왔어요) 129쇄를 찍으며 47만부가 판매된, 그야말로 전형적인 스테디셀러라고 소개되어 있었어요.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나 인물, 그리고 사건 등은 남해안의 아름다운 섬 소록도를 중심으로 모두 실재했던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물론 소설적 상상력이 가미된 상태로 말이죠.

 

이야기는 한센병(나병이라고도 하고 소설 속에서처럼 문둥병으로도 불리어온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전염병이죠) 환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소록도 병원에 조백헌이란 인물이 새 원장으로 부임하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조백헌은 현역 대령인 의무장교인데 군복차림에 권총까지 허리에 찬 채로 소록도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그가 부임해 온 날 밤에 두 사람의 탈출사고가 발생하죠. 탈출사고는 새 원장에 대한 일종의 부임선물이라고 할만 했던 것이, 원장이 바뀌어올 때마다 어김없이 탈출사고가 벌어지곤 했었거든요. 의학기술의 발달로 과거와는 달리 완치율도 높아지고, 또한 원하기만 하면 치료 도중에라도 육지를 다녀올 수 있는 길이 열려졌건만 여전히 목숨을 걸고 탈출행각을 벌이는 원생들의 심리를 새 원장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조원장은 관례적인 부임인사도 치르지 않고 사건을 보고한 보건과장 이상욱과 함께 탈출지점을 방문합니다. 그런 신임원장을 보며 이상욱은, “이 사람은 지금까지의 원장들과는 달리 정말로 자기 동상을 지니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군하고 생각하죠.

 

돌아오는 길에 원장은 섬 주민들을 만나 탈출사고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하지만 모두 묵묵부답으로 일관합니다. 원장은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흥분하고, 이상욱은 그런 원장에게 상황을 좀더 이해시키고자 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게 합니다. 그 과정에서 소록도 역사에 많은 이야기거리를 남긴 제4대 일본인 원장 주정수와 그의 동상에 대해 설명하죠. 주정수 원장은 처음에는 원생들에게 진정한 낙원을 건설해주기 위해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여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지만 점점 자기의 업적을 완수하려는 일념으로 강압적이고 혹독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원성을 쌓게 되었고, 마침내는 원생들의 강제모금과 노역으로 세워진 자기 동상 앞에서 한 원생의 칼에 찔려 생을 비극적으로 마감한 인물이었죠.

 

다음 날 조원장은 원생들이 생활하는 병사지대와 건강인들이 거주하는 직원지대 사이의 완충지점에서 이루어지는 미감아(한센병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와 부모 사이의 면회행사에 참석합니다. 한센병은 유전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전염성도 약해서 미감아들은 건강한 아이들과 전혀 차이가 없다고 해요. 하지만 그 아이들은 직원들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함께 수업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이 속한 분교에 수업하러 오는 교사도 거의 없다는 것을 조원장은 듣게 되죠. 미감아 분교 수업은 대부분 음성병력을 지닌 교사가 맡고 있어요. 극히 드물게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찾아오는 건강인 선생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 중에 서미연이란 여자 보육교사가 소설 속에 등장합니다. 평소 이상욱과 친하게 지내기도 하는 이 여자는 육지에서 신학교를 다니다가 뜻한 바가 있어 소록도에 들어온 후 정착하게 되었다고만 알려져 있는데 어느 날 상욱을 찾아와 자기가 이곳 미감아 출신임을 고백합니다.

 

보육교사 중에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로 윤해원이란 남자 선생이 등장합니다. 섬에서 양성환자로 치료받고 있는 누이 때문에 10년 전쯤에 자원해서 들어와 병을 앓게 되었고, 지금은 완치된 음성병력자입니다. 그런데 주위에 건강한 여자만 보면 구애를 한다거나 봉변을 주어 섬에서 내쫓아버리곤 하는 문제아입니다. 이 윤해원이 이번에는 한 달 넘게 보육교사로 잘 지내고 있는 서미연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품고 음모를 꾸밉니다. 그는 건강한 사람에 대한 일종의 질투심 때문에 이런 비뚤어진 행각을 벌이는 것이죠.

 

조원장은 부임한지 사흘째 되는 날에야 비로소 직원들과 원생들에게 부임인사를 합니다. 오천여 명의 원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자기가 며칠 동안 느낀 이 섬의 불신과 배반의 분위기를 전하며, 진정으로 원생들 스스로 낙원이라 여길만한 곳으로 섬을 변화시키자는 열띤 연설을 합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원생 한 명의 자살사건이 발생함으로써 또 하나의 부임선물을 받게 되죠.

 

자살사건이 있은지 며칠 뒤부터 조원장은 여러 가지 개혁조치들을 시행하기 시작합니다. 과거 섬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던 시절의 상징과도 같았던 벽돌공장의 높은 굴뚝을 철거시키고,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를 가르고 있던 철조망을 제거해 버립니다. 또한 미감아 아동들을 직원지대 아이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게 만드는가 하면, 병사지대 일곱 개 마을에서 가장 영향력있고 나이 많은 사람을 한 명씩 뽑아 섬 안의 모든 일들을 자치적으로 결정해 나가도록 장로회를 조직하죠. 하지만 이러한 깜짝 놀랄만한 조치들에 대해서도 원생들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무표정한 모습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목소리를 높여 반대하는 것보다 더 분명하고 위협적인 거부였습니다. 그리고 이상욱은 새 원장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더 경계심을 갖게 되고, 과거 주정수 원장 시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실 이 비밀 많은 인물인 이상욱은 그 주정수 원장 시절에 병을 앓고 있던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난 미감아였습니다. 아직 한센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시절에는 병을 앓고 있는 젊은 남자가 결혼을 하려면 반드시 단종수술(=불임수술)을 시행해야 했어요. 하지만 이상욱의 부모는 섬의 감시자들의 눈을 피해 아이를 몰래 낳아 키우기 시작했고 다른 원생들 역시 모두 그 비밀을 알고서도 입을 열지 않았죠. 그렇게 5년 동안이나 감시자들의 눈을 용케 피해가며 키웠지만 부모는 불안한 나머지 결국 아이를 섬에서 탈출시킬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육지에서 자라난 상욱은 운명적으로 다시 섬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죠. 더 큰 고통은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낳아 키우고 섬에서 탈출시키는 과정에서 섬사람들의 큰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그들을 배신하고 주정수의 앞잡이가 되어 동료들을 착취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은 살해당했다는 기억이었습니다. 그가 이 섬의 불신과 배반의 분위기를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도, 낙토 건설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조원장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견제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볼 수 있죠.

 

이상욱을 비롯한 섬사람들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조원장은 다음 행보를 이어갑니다. 그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는데 섬에 축구팀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섬 안에 두 개의 팀을 만들어 정기전을 벌이더니 나중에는 육지에 나가서 친선시합을 하는가 하면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까지 하고 돌아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웬 가당치도 않은 일이냐며 시큰둥해 하던 사람들이 점점 축구에 빠져들고 열광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원장을 경계하는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모두가 그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단 한 사람 이상욱만 제외하고 말이죠. 자신감을 얻게 된 조원장은 다음 계획에 착수합니다. 원장의 계획은 고흥반도 남쪽 오마도 인근지역의 바다를 메워 소록도 섬의 두 배가 넘는 면적을 육지로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원생들에게 자신들의 손으로 땅을 일구고 내일의 희망을 열어나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자는 원대한 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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