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부터 10장까지의 내용이 책의 제2부에 해당하는데 2부에서는 제1부에서 제기한 역사발전의 불균형 문제에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던 식량생산 및 가축화의 역사적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수렵채집에만 의존하여 살다가 식량생산(=야생 동식물을 가축화, 작물화하여 그 가축과 농작물을 먹는 일)을 시작한 지는 지금부터 약 11,000년 전이라고 해요. 오늘날에는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량을 직접 생산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음식을 소비하고 있죠. 식량생산은 총기, 병원균, 쇠가 발전하는 데에 필요한 선행조건이에요. 그러므로 각 대륙의 민족들이 언제 어떻게 농경민이나 목축민이 되었는가 하는 시기와 지리적 차이는 그 이후 각 민족의 대조적인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동식물을 가축화 작물화하면 수렵채집 생활보다 더 많은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되어 인구가 조밀해집니다. 또한 정주형 생활을 하게 되어 산아 간격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도 인구밀도가 높아지죠. 정착생활의 또 다른 영향은 잉여식량을 저장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이렇게 저장된 식량은 직접 식량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기능 전문가들을 먹여 살릴 수 있고, 그런 전문가들 중에는 왕이나 관료, 군인 등도 있어 사회가 훨씬 잘 조직화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이런 체제는 정복전쟁을 수행하는 데에 많은 유리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특히 가축화된 동물 중에서도 말은 유라시아가 다른 대륙의 민족들을 정복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답니다.
또한 동물의 가축화와 더불어 인간사회에서 진화한 병원균들(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등)은 일찍이 그 병원균에 노출된 적이 없어 면역능력이 전무했던 원주민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식량생산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시작된 지역으로 확실한 증거가 남아있는 곳은 전세계적으로 다섯 곳에 불과하다고 해요. 서남아시아, 중국,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의 안데스산맥 일대, 그리고 미국 동부가 그 지역들이죠. 그 외에 서유럽과 인더스강 유역, 이집트 등은 다른 곳(주로 서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작물, 즉 창시작물이 오래전에 도입되면서 가축화, 작물화가 시작된 지역들입니다. 이런 지역들은 원래 수렵채집민들이 거주하다가 이웃 농경민들로부터 창시작물들을 들여와서 스스로 농경민이 된 경우인데, 그와는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즉, 외부 농경민들이 창시농작물을 가지고 들어와서 그것을 바탕으로 인구가 늘어나 그 지역에 살던 수렵민들을 죽이거나 쫓아낸 경우입니다. 비교적 근대에 이루어진 경우는 대부분 후자와 같은 경우이고, 여기에는 유럽인들이 개입된 경우가 많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밀려드는 유럽의 농경민과 목축민들에 의해 살해되거나 감염되거나 쫓겨나서 대부분 유럽인으로 교체되어 버린 경우입니다.
인류역사는 이처럼 대부분 유산자와 무산자(농업의 힘을 가진 민족과 못가진 민족, 또는 각기 다른 시기에 농업의 힘을 갖게 된 민족) 사이의 불평등한 갈등관계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수렵채집민이었는데 왜 식량생산을 하게 되었을까요? 보통은 수렵채집민의 삶이 고달프고 위험하기 때문에 정주형 식량생산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농경민이나 목축민들의 삶은 수렵채집민보다 안락하지도, 풍요롭지도 못했다고 해요.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많은 지역에서 수렵채집민을 교체한 최초의 농경민들의 경우 수렵채집민보다 체격도 작고 영양상태도 좋지 않았으며 심각한 질병도 더 많이 앓았고 평균수명도 더 짧았어요. 그렇지만 몇 가지 이유에서 수렵채집보다 식량생산의 경쟁력이 더 컸기 때문에 그런 변화를 겪게 된 것이죠. 전문가들이 말하는 그 몇 가지 이유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야생 먹거리의 감소. 특히 수렵채집민들에게 주요한 육류 공급원이었던 동물자원의 감소.
둘째,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식물의 증가.
셋째, 야생 먹거리를 가공, 저장하는 등의 식량생산에 필요한 각종 기술의 계속된 발전.
넷째, 인구밀도의 증가와 식량생산의 발원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적인 관계.
모든 농작물들은 야생식물종에서 생겨났어요. 고대의 수렵채집민들이 야생식물을 선택할 때 가장 명백한 기준은 열매의 맛과 크기였습니다. 야생식물 중에서 그와 같은 바람직한 특징들을 유난히 많이 갖추고 있는 개체를 수확함으로써 고대인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식물들을 널리 퍼뜨려 작물화의 기반을 닦았던 셈이죠. 저자는 야생 먹거리의 작물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다윈이 「종의 기원」에 기록했던 말을 인용합니다.
“하찮은 재료를 가지고 그토록 훌륭한 품종을 만들어낸 원예가들의 솜씨에 우리는 놀라움을 표시하지만 그러나 그 기술은 사실상 간단한 것이고 마지막 결과를 놓고 본다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예외없이 처음에는 가장 잘 알려진 변종을 재배하다가 그 종자를 뿌렸을 때 약간 더 나은 변종이 나타나면 다시 그것을 선택하는 식으로 되풀이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윈의 “자연선택”이란 말은 자연조건에서 어떤 종의 일부 개체들이 다른 개체들보다 더 잘 생존하거나, 더 성공적으로 번식하거나, 또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는 뜻이죠. 이런 의미에서 다윈의 자연선택의 과정이 인위적으로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이 바로 야생 먹거리의 작물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류사에서 도시, 문자, 제국, 문명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발전이 가장 먼저 일어난 지역은 흔히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부르는 서남 아시아의 한 지역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발전이 가능했던 것은 그 지역이 식량생산에서 가장 앞서 있었기 때문이죠. 이 지역의 농경상의 몇 가지 이점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어요.
첫째, 농경에 유리한 지중해성 기후라는 점.
둘째, 농경식물의 야생조상이 이미 풍부하고 생산성이 높았다는 점. 즉, 이 지역의 주된 작물인 밀과 보리는 야생상태에서부터 이미 생산성이 높은 작물이었고, 재배가 시작된 후에도 많은 변화가 필요치 않았어요.
셋째, 이 지역은 농경민에게 편리한 생식생태를 가진 자웅동주형 자화수분 식물의 비율이 높았다는 점.
여기에다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는 다른 지중해성 기후 지역보다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의 야생조상도 풍부했어요. 염소, 양, 돼지, 소가 매우 일찍부터 가축화되었죠. 이처럼 적당한 야생식물과 포유류가 있었기에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집약적인 식량생산이 일찍부터 가능했던 것이죠.
이와 비교해 볼 때 뉴기니의 경우 세 가지 취약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는 달리 중요한 곡류가 단 한 종도 작물화되지 못하고 대신 뿌리작물이나 나무작물이 중심이었다는 점.
둘째, 가축화할 수 있는 대형 포유류가 전혀 없었다는 점. 현대 뉴기니에 존재하는 가축은 지난 몇 천 년 안에 동남아시아에서 들어온 돼지, 닭, 개 뿐입니다.
셋째, 뉴기니의 뿌리작물은 단백질 뿐 아니라 열량까지 부족했다는 점. 수백 년 전에 외래 뿌리작물인 고구마가 들어온 이후 뉴기니 고지대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만 보더라도 이런 사실은 분명해지죠.
따라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뉴기니의 차이는 그 지역의 사람들의 차이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모든 것은 그 곳의 생물상과 환경 때문이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가 인간에게 중요한 이유는 고기, 유제품, 비료, 털과 가죽 등을 제공하고 쟁기를 끌거나 수송수단 등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두루 퍼져있는 대형 포유류 가축은 5가지인데 양, 염소, 돼지, 소, 말이 그것들이죠. 한정된 지역에만 서식하는 종들까지 합쳐도 모두 14종에 불과해요. 그런데 이 14종 중에서 13종의 야생조상들이 모두 유라시아에만 국한되어 있었어요. 그것이 유라시아 사람들이 총기, 병원균, 쇠를 갖게 된 중요한 한 가지 원인이었습니다. 이 14종의 고대 조상들이 유라시아에 집중되어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유라시아가 땅덩어리가 가장 넓고 생태학적으로도 가장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다른 대륙들은 생태적으로 좁을 뿐 아니라 1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남북 아메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대형 포유류들은 홍적세 말기에 이주해 들어온 사람들에 의해 멸종되어서 가축이 될 기회를 얻지도 못한 것이죠.
가축화에 성공한 14종 중에서 13종이 유라시아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유라시아인들이 다른 대륙 사람들에 비해 더 뛰어났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No”예요. 사람들의 차이가 아니라 종들의 차이가 그런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죠. 저자는 영국의 과학자 프랜시스 갤턴의 말을 인용하면서, 모든 야생동물들은 한번쯤 가축이 될 기회가 있었지만 적은 숫자의 종들만이 그 시험을 통과하여 이미 오래전에 가축이 되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과거의 어떤 사소한 문제 때문에 실패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야생상태로 남을 운명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영원히 야생상태로 남을 운명”이란 어떤 것을 말할까요? 여기에 해당하는 조건들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을 인용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톨스토이가 이 문장을 통해 의미한 바는, 행복한 결혼생활에 필요한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긋나면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성립하더라도 그 결혼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이러한 원리는 동물의 가축화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하네요. 야생 후보종이 가축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특성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 필수적인 특성들 중에서 단 한 가지만 결여되어 있어도 가축화의 노력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저자가 말하고 있는 필수적 특성은 모두 여섯 가지입니다.
(1) 식성 : 코알라처럼 즐겨 먹는 식물이 너무 까다롭거나, 고기만 고집하는 육식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음.
(2) 성장속도 : 가축은 빨리 성장해야만 사육할 가치가 있음. 다 성장할 때까지 15년을 기다려야 하는 코끼리나 고릴라는 부적합함.
(3) 번식의 문제 : 우리에 갇힌 상태에서 교미하기를 꺼린다거나(치타), 길고 복잡한 구애과정이 필요한 경우(비쿠냐) 가축화하기 어려움.
(4) 골치 아픈 성격 : 회색곰이나 코뿔소의 경우 많은 고기를 얻을 수 있겠지만 사람을 공격하거나 죽이는 성향 때문에 불합격.
(5) 겁먹는 버릇 : 가젤의 경우 우리에 가두면 겁을 집어먹고 그 충격으로 죽거나 탈출하려고 울타리를 마구 들이받다가 머리가 깨져버림.
(6) 사회적 구조 : 무리를 지어 사회적 관계 가운데 살아가는 종들은 가축화하기 쉽지만 독립된 세력권을 갖고 혼자 살아가는 동물들은 대부분 가축화되지 않았음.
세계지도를 놓고 각 대륙의 형태를 비교해보면 남북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는 동서의 길이보다 남북의 길이가 더 긴 형태입니다. 다시 말해 이 대륙들의 축의 방향은 남북방향이라고 부를 수 있죠. 하지만 유라시아는 동서방향이 더 길게 되어 있어요. 축의 방향은 농작물과 가축은 물론 문자와 바퀴 등 발명품들의 전파속도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식량생산의 기원이 총기, 병원균, 쇠의 탄생과 발전에 핵심적 요소가 되었듯이, 식량생산의 전파과정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했죠. 남북축 방향보다는 동서축 방향이 휠씬 전파속도가 빠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위도상에 동서로 늘어서 있는 지역들은 낮의 길이도 똑같고 계절의 변화도 같아요. 기온과 강수량, 생식지나 생물군계, 질병 등도 비슷한 경향이 있죠. 식물의 발아와 성장, 질병에 대한 저항력 등은 바로 그같은 속성들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것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가축과 작물이 서쪽과 동쪽으로, 다시 말해 유라시아 전역으로 빨리 전파된 한 가지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아프리카 대륙의 경우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가축과 작물들이 이집트와 에디오피아까지는 신속하게 전파되었지만 그 아래쪽의 열대지역은 넘을 수 없는 장애물로 작용했어요. 이러한 상황은 남북 아메리카에서도 마찬가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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